얼떨결에 손가락을 잘린 동자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어느 늦은 겨울 밤 깊은 산사 어두운 호롱
불 아래서였다. 그 이야기가 하도 당황스럽고 우습기도 하여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것이 벌써 스
무해가다되어간다. 이야기를전한이나들은이모두그때는그뜻을알지못하고마음과표정을
관리 못하고 말았었으니 그저 마음은 잘린 동자의 작은 손가락에만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잘린
손가락을 찾으려고 희미한 호롱불을 머리 위에 이고 어두운 방 안만 헤매고 다녔으나 오늘 다시
이글을읽고방바닥을쓸어보되이미잘린손가락은어디에도찾을수없다.
목전目前의 달빛이 흐리다 한들 그 빛을 잃기야 했을까. 다만 내 눈이 어두웠을 뿐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황량한사막한가운데서였다.
역시 황량한 사막의 달은 그 빛이 살아 꿈틀거리듯 성성醒醒하였다. 여기에 서천西天하늘의 칠성七星은
머리위에서맴돌아남쪽하늘저만큼에걸린보름달에도그빛을잃지않았으니같은달빛과별빛이라도어
디에있는가에따라제빛을다하기도하지만또그빛이시름을더하기도하는것이다.
꿈에서돌아왔는지내자리로돌아와바라본도시의밤하늘달빛은늘제빛을다하지못하니마지못해비
춘다. 도심의 현란한 불빛과 맑지 않은 공기는 눈을 어둡게 하고 달빛을 막는다. 달이 밝아 별들이 그 빛을
잃는것과는 또다른 모습이아닐 수없다. 밖이환하다보니내면의빛을 잃는다는이치가바로 이런것이 아
닌가 싶다. 사막과 황무지의 간소함에 하늘은 제 색을 잃지 않고 참으로 완연하다. 이제 내 자신을 둘러보니
본바탕위에화려한치장으로더하기가번잡하며또번거롭다. 무심한대지가하늘의그빛을살리듯밖으로
내걸었던치장과장식을내오늘은거둬들이고맑은달빛으로내창안을환히할일이다.
시름시름 제 빛을 잃어가는 밤하늘 달빛과 별빛에 마음을 두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목전의 달빛
만을책망하다가오가는이하나없는그어둔밤하늘에오늘도하릴없이마음만노닐고만다.
중국 사람들이 천축天竺에 관심을 갖고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이미 이천년도 더 전의 일이다. 처음 많은 사
람들은재물을 위해그 길에목숨을 걸었으나점차마음의 등불이그 길을밝혔다. 불법과진리가 그길을 밝
힌것이다. 경전이그길을따라한역되었으며, 달마의선법도그길을따라들어왔다.
하지만 그보다 이전 한漢나라 무제는 하루 밤에 천리를 달리며 붉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는 한혈마汗血馬
를 찾아오기를 명하였으니 이후 그 길로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의 명마名馬들이 줄을 이었다. 이른바 실크로
드는이렇게제모습을드러낸것이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말을 좋아하기로 이름난 군주였다. 특히 거칠고 단단한 말은 당의 황실에 즐거움을 주
었으니 한간(韓幹, 唐8세기)은 이와 같은 말을 잘 그린 화가였다. 그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미
천 이삼백년도 지난 그의 말 그림이 지금에도 전해지고 있다. 조야백照夜白이라는 현종이 사랑하던 애마의
그림이그것인데, 우리의상상과는너무나다른두루뭉실한몸통과짧고여윈다리를한말그림이다.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인 두보杜甫는 한간의 말을 보고‘뼈는 빼고 말의 몸만을 그린다(畵肉不畵骨)’라고 비평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그의 말 그림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간은 오히려 엉성하기 그지없
는 외형에서 말의 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그림 중앙의 두툼한 쇠기둥은 밧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며 투
쟁하는말의마음과대비되고있다. 격렬하면서도고통스러운말의눈빛을보면말의살진몸따위에는마음
이 가지 않는다. 다만 말발굽을 구르며 머리를 쳐들고 눈빛을 내려 깔며 달리고자 하는 그 의지만이 절실해
질뿐이다. 이처럼처연한눈빛과달려나갈듯한그말발굽을보면지금도내가슴이소용돌이친다.
고금의 많은 화가들이 말을 그리기를 즐겨 하였으나 그들의 붓질은 초원을 달리는 준마駿馬에 있지 아니
하였다. 윤두서의 말도 그러하였거니와 화가들의 말은 언제나 기둥에 묶여 있으며, 나무 기둥에 묶여 의지
하고있으니화가들의처신이그처럼자유롭지않음인가, 아니면보이지않는기둥에묶여있는뭇사람들의
마음을조롱함이던가. 어느것이라한들보는내맘이편치아니하다.
구지俱화상은 언제나 어떤 사람이 불법에 대하여 질문하면 단지 한 손가락만을 세워서 보여주었다.
뒤에 구지 화상을 시봉하는 동자가 한 명 있었는데, 구지 화상이 마침 외출한 뒤 한 사람이 찾아와“구지 화
상께서는어떤법문을설하는가?”라고묻자그동자역시손가락을세워보였다.
이후에구지화상은동자가자기의불법을흉내내고있다는이야기를전해듣고는어느날하루드디어동
자의손가락을절단해버렸다.
동자는 아픔을 참지 못해 통곡하며 달아나고
있을 때, 구지 화상은 동자를 불렀다. 동자는 머
리를 돌려 화상을 쳐다보니 그때에 구지 화상
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곧 동자는 홀연히 깨
달았다.
얼떨결에 손가락을 잘린 동자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어느 늦은 겨울 밤 깊은 산사 어두운
호롱불 아래서였다. 그 이야기가 하도 당황스럽
고 우습기도 하여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것이
벌써 스무해가 다 되어 간다. 이야기를 전한 이나 들은 이 모두 그때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표정을
관리못하고말았었으니그저마음은잘린동자의작은손가락에만한동안머물러있었다. 잘린손가락을찾
으려고 희미한 호롱불을 머리 위에 이고 어두운 방 안만 헤매고 다녔으나 오늘 다시 이 글을 읽고 방바닥을
쓸어보되이미잘린손가락은어디에도찾을수없다.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 있지도 아니한 쇠기둥을 그림 한복판에 그려 넣은 화가의 붓을 내가 가서 확 분
질러놓을일이리라생각하니이내그림속의말은초원을한바탕뛰놀고있을것이니참으로통쾌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그 말은 이미 그곳에 있지 아니한데, 나는 아직도 애꿎은 쇠말뚝에 매여 한간만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