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의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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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현진
2006년 06월 292호
충청도의어느사찰에서정진할때의일이다.
오후의입선入禪시간. 고요한절마당이갑자기소란스러워졌다. 한무리의등산객들이하산하던길에
법당으로몰려온듯했고왁자지껄떠드는소리가도량의정적을깨고있었다.
그들의대화는선당禪堂에서참선하는스님들의귀에들릴정도의큰소리였으므로순간순간의
화두집중에방해가되었다. 나또한그들의참배시간이끝나기를바라면서꾹참고있었지만
그들의대화는점점커지고있었다.
누군가가 일어나서 그 들을 혼낼 상황이었고 젊은 스님이 나간다면 혈기에 싸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다.
그때선덕禪德으로계시던노스님이일어나서조용히문을열었다.
한바탕호통을쳐서보낼줄알았는데그노스님은손가락을입에대고낮은목소리로말씀하셨다.
“쉿, 조용히하세요. 여기는스님들이공부하는장소니까떠들면안됩니다. 쉿.”
그한마디에그들도자세를낮추고무안한얼굴로살금살금경내를빠져나갔다. 다시문이열리고
노스님이들어왔고내마음의갈등또한사라졌다. 강한것을흡수하는것은부드러움이다.
어쩌면선의정신은번뇌의대상에서벗어나있는것인지도모른다. 시비분별에서자유로워질때
비로소그시비분별을극복할수있다는것을배울수있었다.
학인시절해인사극락전에서노스님들을모시고있을때다.
지금은 입적하고 계시지 않는 고봉 노스님 앞으로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노스님은 그 소포에 묶인 끈을
가위로자르지않고한가닥한가닥풀고계셨다. 그이유를묻자노스님의가르침은아주짧았다.
“이보게, 묶인것은풀어주어야한다네!”
알고보면순리는주어진인연을역행하지않는것이아닐까. 우리삶에서도대립과단절보다는
화해와용서가중요할때가더많다.
송광사는예나지금이나새벽도량석을학인스님들이순서를정해차례로하는것으로유명하다.
이른새벽에눈비비고일어나서첫목탁을울리면승방마다불이켜지고산중은어둠에서깨어난다.
그렇지만학인들보다먼저일어나는분은도성당道成堂에계시던계룡노스님이었다. 가끔학인들이
피곤해서도량석시간을깜빡놓치면방앞에와서헛기침을하시거나문을살짝두드리고가시곤하셨다.
노스님이 입적하신 후 도량석을 빼 먹은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그날 아침공양시간에 도량석 당번을 맡은
학인을혼내면서방장스님은이렇게탄식하셨다.
“자네때문에송광사창건이후처음으로도량석을올리지못한허물을범했으니불조佛祖에게
어찌고개를들겠는가?”
그날우리대중들은계룡노스님의빈자리를새삼확인할수있었다. 어른은고목古木과같다.
그잔잔한그늘은나무가쓰러지고나면확연히드러나는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