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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나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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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06년 05월 291호
나우스님 진부읍내에서출발한버스는몇몇마을을지나고월정사를지나며마침내승객들을다내려놓았다. 거기서
부터 버스는 오대산 계곡을 따라 터덜터덜 비포장 흙길을 거슬러 올랐다. 혼자 남은 버스 안에서 몸은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내 존재가 이 울퉁불퉁한 길에 찾아든 것도 연이란 생각을 했다. 버스가 9km의 길을 다 오르자
걸어 올라야 하는 길이 이어진다. 그랬다. 이 길은 저 길로 이어지고 이 연은 저 연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전나무들이 쭉쭉 뻗은 길을 걷는 사이 봄비가 머리카락에 붙었다가 굴러떨어졌다. 빗물과 함께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덧없는 망상들을 툭툭 털어내고 상원사 도량으로 들어섰다. 나우懶牛스님이라고 했다. 게으른 소 한마리가 도량 한가운데 혹은 제방이나 법당에 곧은 자세로 오도카니 앉아 있는 풍경을 상상을 하였던 건 스님의 법명 때문이었으리라. 빗발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스님은 내 뒤통수에 첫 말씀을 던지셨다.
“내가 게으른 걸 좋아해. 게으르게 살자는 거지.”
13세기의 유명한 게송 중에‘나우’라는 무문혜개의 선시가 있다. 내용인즉, 소가 제 근본을 잊어 이 밭과 저밭을 지나지 아니하고 이 근래에는 더욱 멍에 쓰기를 두려워한다. 외양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살 찌우는 것을 기각하고 푸른 버드나무 아래에서 자연를 즐긴다. 요즘 인간사로 치자면, 삼계 속에서 초탈해서 산다는 의미다. 호화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며 무리한 욕심으로 더 높은 권위에 앉기 위해 평생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아니라.
“뒷방에 있으면서 도량의 쓰레기나 주우면서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어. 절대적인 신, 신비적이고 이상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현실에 비중을 두고 그 안에서 얼마만큼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사느냐에 가치를두고.”
스님의 법명에 붙어 있는 게으름은 내가 범속한 세상에서 피우는 더러운 게으름이 아니었다. 깊은 산 속의 맑은 물이 매일 그만큼씩 쉬지 않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 늘 같은 보폭으로 그렇게 고였다가 흘려보내는 옹달샘에게누가게으르다할것인가. 스님은출가후부터지금껏걸망메고선방에다녔다. 그것을 보았다면 말없이 수도 중인 소를 누가 게으르다 할 것인가.
“탐진치의 노예가 되서, 정신없이 달려갈 필요는 없는 거야. 오히려 한 발 물러나서 한 생각 쉬는 것만 못하지.”
스님은 참선이나 기도하는 것을 모든 만물과 더 조화롭고 아름답게 살자는 데 의의를 둔다 하였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 한송이 꽃은 씨앗과 흙과 물과 바람과 햇빛과 이 세상의 모든것이 모아져서 피어난다
는것. 그때서야우린꽃의아름다움을볼수있다는것, 연기법이다.
“오장육부가 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몸이잖아.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줄 때 몸이 건강하단 말이지. 우리도 자연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결국은 하나야. 그렇기에 다 같이 조화롭게 잘 살 때 가장건강한거지.”
홀로 독립되어 영원한 것은 없다. 스님이 문득 박수를 한번 딱하고 치신다. 손 하나만으로는 소리가 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우린 모두 관계 속에 있다는 말씀이다. 연기법을 알면 무언가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다. 어떻게살아야할것인가에대한답이그렇게박수소리로흘러들어왔다.
사량분별심을죽이라하였다. 선그어나누는데서부터나자신도힘들어지고더불어사는사람들의다툼까
지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자기 깜냥으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은 큰 병이라는 말씀이다.
본래 세상에 좋고 나쁜 것은 없으므로. 그러니 서로 배려하면서 친절하게 더불어 살라는 말씀이다. 스님이 생각하시는사상이리라.
스님은행자시절부터탄허스님을시봉하고만화스님께계를받았다. 강원을마치고는바로선방부터찾아
들어 지금까지 선방에 앉아 있다. 84년도에 처음으로 봉암사 선방에 들어갔으니 20여 년이 넘는 세월이다. 처음에 선방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석가모니처럼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인이 되고 싶어서였다. 처음에 선방에들었던그겨울이잊혀지지않는다고했다. 45일용맹정진하겠다는마음은마치전쟁터에나가는심정이었다고. 눈보라 치던 이화령 고개를 넘던 얘기를 하는 스님의 눈에 초발심이 가득하였다. 그때의 마음으로 지금도계속해서선방에앉으시는이유를물으니, 스님은‘할일도없고…’라며말끝을잇지않으셨다.
“그냥할뿐이야. 대단하게뭘이루겠다는마음이아니라.”
20여 년 간 걸망 메고 제방에 다니며 수행을 하셨으면서도‘그냥’이라는 말을 쓰시는 스님의 눈빛과 찻잔을 드는손은봄볕처럼가든하였다. 그말씀앞에서니말없이굳건하게산을지키는큰바위를대하는듯하였다.
“이런 내용의 선시가 있어. 봄이 왔다는데, 대체 어디에 왔는가? 그래서 봄을 찾으러 이 산 저 산 다녔던 거야. 열심히 찾으러 다닌 거지.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지쳐서 집에 와봤더니 뜰 앞에 매화가 피어 있는 거야.
본래피어있었는데그제야깨달은거지. 아, 봄이여기와있구나하는거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의 우리 생활을 벗어나서 어딘가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는, 참모습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 그리고 현 생활 주변에 있다는…. 그때 관념의 틀은 깨어지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니 스님의 수행은 달걀 안도 우주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밖의 틀이 아닌 자기 안의 틀을 깨부수는 것이스님의수행이아닐까.
“배고프면밥먹고목마르면물먹고그러는거지.”
시계를올려다보시기에바쁘시냐고물었더니, 할!
“공양시간이니까지금은공양하는게바쁘지.”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는 상원사는 문수 7일 기도 중이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재가불자들과 다시 기도에 들어가신다.
“기도든 참선이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자체에 좋고 나쁜 것은 없어. 기도나 참선이나 다 하나야.
어디에 처하건 무엇을 하든 분별심이 끊어진 간절지심만 있으면 돼.”
분별망상에끌려다니지말란다. 망상은물거품처럼본래실체가없는것이기에. 기도나참선을하다보면자
기도모르게망상이사라진단다.
스님은참선의기본을부처님의가르침을제대로공부하는것이라한다. 불교의중심사상을명확히공부한
다음에 참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럴 때에야 어떻게 참선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도중에 길을 잃더라도 다시 제 길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공부와 참선이 자기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마음에참선만무턱대고할일이아니다. 그랬다간봉사가무턱대고서울로나서는꼴이니. 참선이라는 모양에만 치우치다보면 객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참선이라는 틀에 얽매여서 그 틀 안의 노예가돼버린다는것. 공부는뒷전이되고모양만버젓한참선이되어서는안된다는것이다.
“공부라는게앉아서만하나? 서서도하고누워서도하고걸으면서도하고일하면서도하는거지. 동구불출
이고 묵언이고 일종식이고 다 필요 없는 거야.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자세인 거지. 자기 근원에서부
터발심이나야하는거지.”
저녁 기도가 끝나자 7일 기도중인 신도들이 스님의 죽비소리와 함께 법당에 앉아 참선에 든다. 삼십 분 정
도의 시간 동안 나는 망상의 벼랑에서 헤매니, 눈과 귀와 코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싶다. 결국한순간에이룰것은아무것도없다는것만제대로깨달았다.
스님은 고향인 고창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여름방학이 막 끝나고2학기가 시작돼 학교를 가던 길이
었다. 문득 책가방을 나무 밑에 내던지고 절로 들어섰다. 그 전에 어떤 스님을 만난 적도 없고 절에 가봤던 것
도아닌데그렇게부처님과연을맺었다고했다. 그렇다면, 스님은이세상에서어떤존재냐고우문을드렸다.
“우리 몸의 단세포가 어떤 놈은 귀하고 어떤 놈은 천한가? 스님이라고 해서 귀하고 청소부라고 해서 천하
나? 아무리유명하고잘났다고해도우리는 이우주의똑같은단세포들이야. 그누구를 귀하고천함으로가를
순없어. 다보배스럽고소중한거지. 손은귀하다고두고발은천하다고잘라버리나?”
그런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공부라는 게 의식의 변화를 위함이니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은 환경을 두고도 누구는 행복해 하고 누구는 불행해 할 수 있다. 그것이 마음자세라는 것이니 공부를
통해틀에갇힌관념의변화를꾀해야한다는것이다. 그러더니스님은절집방한칸에머물며도량의청소부
로살고싶단다.
상원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은 것이 올해로3년째. 그러나 상원사 선방에서 오래도록 살았기에 그 시간을 더
하면 13년째 상원사에 머물고 있다. 오래도록 머물렀으니, 이곳은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답냐고 여쭈었다.
스님은문밖의밤바람으로지나가며말씀하셨다.
“봄도좋고여름도좋고가을도좋고겨울도좋지.”
새벽 세시, 범종소리가 오대산의 광활한 적막을 깨운다. 어둠 가득한 심해의 눈뜬 물고기처럼 나는 방 안에
누워 갸륵한 범종소리를 듣는다. 잠을 털어내고 나가니 불자들이 소리도 없이 도량을 가로질러 문수보살님
앞으로 간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목탁소리처럼 톡톡 또르르르 문수보살님 앞으로 나를 이끌었
다. 나우 스님의 불경 읽는 소리에 마음은 한없이 지혜의 문수보살님께 귀의한다. 그리고 스님의 해석에 따르
는게으름에도귀의한다.
어제의 비는 온데간데없이 아침볕이 곱다. 스님 방 안에도 그 볕이 창문 크기만큼 내려앉았다. 그리고 창문
크기만큼의 풍경이 내다보인다. 바람도 딱 창문 크기만큼만 살며시 들어와 앉는다. 봄에도 좋은 상원사의 아
침, 돌아서시는 스님께 합장을 하고 나도 돌아서 흙길을 오래도록 걸으며 게으른 소처럼 생각한다. 지금은 걷고싶으니‘그냥’걸을뿐인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