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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얼마나 절실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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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영진 1999년 02월 204호
밖에는 그믐달 하나 내려와 겨울 나뭇가지에 결려 있고 사방은 태고의 정적만이 감돌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온종일 견성見性을 향해 화두를 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선방 대중과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멀리 달이 나고 저 멀리 숲을 흔들며 지나는 바람만이 내 가슴속 저 심연을 흔들고 지나간다. 그 바람소리 가슴으로 들으며 나를 향해 묻는다.
‘오늘 하루, 얼마나 뜨겁게, 그리고 절실하게 화두와 하나가 되었는 가.’
내게 다음 철은 없으니 이번 한 철이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으로 선방에 방부를 들인 터이다. 지금이 순간도 온몸으로 깨어 있으며, 또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몸을 뒤척이다 문득 고개 돌려 보니 어느새 수좌 하나가 가부좌를 틀고 그림처럼 앉아 있다. 그는 이마도 잠자리에 들고 나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큰방에서 함께 대중 생활을 하게 되면 잠자리에든지 삼십 분까지는 아무리 정진을 하고 싶어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다른 수좌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다. 저렇듯 한 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고 도에 대한 절실함으로 앉아 있는 저이는 이마도 초학初學의 수좌임에 틀림없으리라. 그의 곧고도 신섬 듬뿍 배인 초발심이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내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이번 동안거의 결제가 시작되고 나서도 나는 한참 화두에 몰입하지 못했다. 불교도라면 누구나 그렇겠으나 나 또한 지난 해 말에 조계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선방에 들어왔고, 그래서인지 한참 동안 마음의 안정을 누리지 못했다. 그들을 보며 내 공부 없음이 참담했고 무엇보다 저 초학들에게 얼마나 면목이 없었던가. 그래도 우린 수좌의 본연의 길을 굳건히 걷자고 서로를 격려했고, 지금 저들 초학자들은 잠을 잊은 채 앉아 있다. 아마도 곧 수좌 몇이 슬며시 일어나 앉아 밤을 지새울 것이다.
저들을 단 한순간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저 서슬퍼런 초발심을 나는 언제 맛 보았던가. 아마도 스물일곱 해 전 금산사에서 시작한 행자시절이었을 것이다. 열일고여덟에 신문에 발을 들여 놓았다. 뭐 대단한 구도에의 일념으로 절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명도 짧게 태어난 데다가 까닭 없이 시름시름 앓고 사춘기를 지내는 나를 보고 돼 집에 가끔 들르던 스님이 절에 들어가 요양하며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짐을 싸들고 금산사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불연이 깊었음인지 절에 들어오자 머리 깎고 염불 익히며 노스님 시봉하고, 한겨울 찬물에 걸래 빨아 청소하며 후원에 들락거리며 일하는 사이에 나를 줄곧 따라다니던 그 까닭 모를 병이 씻은 듯이 나았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절집 생활이 마음에 쑥 들었다. 염불하는 것이 환희로웠으며 , 노스님 방에 들어가 한문을 익히는 시간도 즐거웠다. 법당의 부처님이 그리도 좋았고 스님네 사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아주 자연스레, 내가 갈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신심이 돋던 즈음. 새벽 도량석을 하고 싶은데 그 꼭두새벽에 가장 먼저 법당에 들어가 목탁을 꺼내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법당에 계신 부처님이 그리도 친근히 여겨졌건만 왜 그리 혼자 들어가기가 무섭던지, 그래서 법당 계단 앞에 앉아 있다가 다른 스님이 목탁을 들고 나오면 목탁을 빼앗다시피 해 도량석을 돌곤 하였다. 아아, 그 신새벽 청량한 공기가 싸아 코로 스며든 채 염불을 하며 도량석을 할 때의 환희로움에 란, 아마도 그 가슴 가득 번져오던 환희가 내 초발심의 시초였을 것이다.
행자생활을 시 작하자마자 나는 그 때 강사 스님이면서 금산사 주지로 계시던 용봉스님을 시봉하게 되었다. 세납 여든이던 노스님은 참으로 천진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고, 육칠십 되는 제자들이 찾아오면 여러 경전을 예로 들며 말씀하시는데, 사통팔달이었다. 그렇듯 천진하셨으나 어찌나 시봉하는 시자들을 혼내던지 시자가 자주 바뀌고는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노스님이 내게는 꾸지람 한마디 안 하고 각별한 정을 쏟으셨다. 방 청소를 하러 들어가면 ‘청소는 나중에 하고 이것부터 외워라’ 하던 당신이 손수 쓴 천자문을 내 주고, 간단히 사주보는 법까지 일러 주셨다. 그러나 그럴 즈음, 노스님께 꾸중을 듣고 쫓겨날 뻔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종일 종종 걸음으로 바쁘다가 잠깐 짬이 났다. 행자 몇이 뒷방에서 바둑을 둔 것이 잘못이었다. 바둑을 좀 둘 줄 알던 나도 곁에서 바둑 두는 것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총무 스님이 나타나셨다. 뒤에 내 은사스님이 됐고 지금 금산사 주지로 계신 도영 스님이었다. 바둑판을 당장 쪼개 버리라는 스님의 엄명에 바로 스님 앞에서 바둑판을 산산조각이 나 불쏘시개감으로 변해 버렸다.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스님께서는 바둑알을 내게 내밀며 멀리 내다 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쩐지 바둑알을 버리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다시 들고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일이 잊혀질 무렵, 행자들이 방 깊숙이 놓아둔 것을 어찌 찾아내어 다시 바둑을 두다가 다시 총무 스님 눈에 띄었으니, 불똥이 내게로 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날 나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눈물이 쑥 빠질 만큼 총무 스님에게 혼이 났는데, 다행인 것은 노스님께선 그 일을 모른 채 지나간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을 노스님이 아셨다면 스님 시봉을 들던 모든 이가 한결같이 듣던 그 참한 꾸중을 나도 들였을 것이다.
‘이, 천치야 만치야 구만치야, 나가서 죽어 버려라, 내 너의 사십구제를 지내 주리라.’
「초발심자경문 을 배우며 초발심을 다지던 행자시절을 여닮 달 만에 마치고 미륵전에서 계를 받았다. 칠월 보름,광목 두루마기 위에 장삼과 가사를 받쳐 입어 찌는 더위에 찜찔 일이었으나 정식으로 출가사문에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사실과 계를 받는 그 날로 세상의 모든 게 달라져 보이리라는 기대감으로 더위는 아랑곳없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 지나도록 ‘행자’ 라는 호칭이 ‘스님’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 그 날 밤 얼마나 허망하고 쓸쓸하던지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