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논의의 전제는 지혜와 인내,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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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12월 286호
대중이 한 울타리에 모여 사는 한 선거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어느 조직이든지 목적한 일을 잘 이루기 위해 적절하게 소임을 나누고,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아무리 작은 소임일지라도 그 소임을 맡기는 사람은 적임자에게 소임을 맡겼는지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인선은 가장 중요한 일로 꼽힌다.
우리는 이번에 우리 종단의 가장 큰 소임자를 뽑는 큰 일을 치렀다. 아마, 모든 종도들이 선거기간 동안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이런 마음으로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새 지도자를 뽑는다는 기쁨과 종단 발전을 위한 전망을 그려보는 마음도 적지 않았겠으나,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우리 종단은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총무원장과 중앙종회의원을 뽑기 위해서다. 그런데 선거를 치를 때마다 돈선거니 비방이니 하는 듣기 민망한 말들이 오간다. 이번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전과 비교해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돈선거와 비방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총무원장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선거법 개정은 전임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 재직 때부터 있었다. 종회의장단이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으며, 원로의장단을 방문해 의견을 듣기도 했으니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다시 선거법 개정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선거를 치러보니 현행의 선거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번 선거기간 동안 활동을 벌였던 ‘청정선거실현승가운동본부’는 해단식에서 선거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현행의 321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총무원장 선거 방식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압축했는데, 종책선거를 불가능하게 하며, 후보자가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교계 29개 단체가 참여하여 구성한 ‘청정선거문화정착운동본부’도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는 금품 수수, 매관매직 등의 선거부정행위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현 선거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계의 중진이랄 수 있는, 이번 32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선거인단들은 ▷적은 수의 선거인단, ▷돈을 쓰게 하는 제도, ▷어른을 모시는 풍토가 사라지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불교정보센터, 2005. 10. 29.)
문제점의 근원은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라는 데로 모아진다. 현재의 총무원장 선거는 중앙종회의원 81명과 각 교구에서 선출된 선거인단 240명 등 모두 321명이 사부대중을 대신하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간접선거 방식이다.
321명이라는 적은 수의 인원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하기 때문에 종책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요구는 애초부터 뿌리내릴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 청정선거실현승가운동본부와 청정선거문화정착운동본부, 한국불교기자협회, 불교방송이 후보자 초청 종책토론회를 열려고 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후보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부했기 때문인데, 득표를 위해 선거인단을 접촉하는 것이 토론회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돈선거 얘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도 ‘적은 수의 선거인단’이 꼽힌다.
현행 선거법의 가장 큰 문제는 다수대중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접선거제도의 장점은 선거 비용이 적게 들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라는 것이 소임자를 뽑음에 있어 대중의 뜻을 반영한다는 의미인데, 간선제는 선거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투표권자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다수대중의 의사는 묻히게 되는데, 선거인단의 선출 방식이 직접선거가 아닐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교구에서는 교구종회를 열어 선거인단을 뽑았는데, 직할교구인 조계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몇몇의 ‘전형위원’들이 선거인을 제안해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안은 무엇인가? 직선제와 추대제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청정선거실현승가운동본부는 직선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선안을 제안하겠다는 방침인데, “직선제에 대해 승가 내부에서 비판이 있으나, 총무원장 선거는 직선제로 실시하는 것이 후보자가 대중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고 종책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길이다. 직접선거의 투표권의 범위는 산중총회에 준하는 기준으로 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중총회법 4조 1항은 산중총회의 구성원을 ▷비구계 수지 5년 경과한 재적승 ▷임명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교구본사 국장급 이상의 종무원인 비구 ▷교구 관할 말사주지인 비구, 비구니 ▷비구계를 수지한 지 5년을 경과한 자로 주민등록상 2년 이상 당해 교구본사에 거주하고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청정선거문화정착운동본부도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운동본부는 11월 21일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예방한 자리에서 전달한 건의문을 통해 “우리는 다수 교단 구성원들의 뜻과 여론이 수렴되고 반영될 수 있는 직선제로 선거법이 개정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부대중이 선거권을 갖는 직선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만,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여 비구·비구니계를 수지한 후 일정한 기간을 경과한 출가수행자가 선거권을 갖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운동본부는 선거법 개정에 총무원도 적극 나서줄 것도 당부했다.
선거인단들은 “종교단체에서 웬 선거냐”며 추대 또는 원로회의 같은 곳에서 지명하는 방식이 좋다는 의견과 직선제로 하되, 승랍 20년 이상의 비구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 논의는 청정선거실현승가운동본부에서 개선안을 종회에 제출하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논의의 순서가 직선제냐, 추대제냐로 바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수대중의 뜻을 모은다는 선거 본래의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불교 전래의 대중공의를 모으는 지혜를 현실에 적용해나가는 안목과 인내, 양보의 미덕이 제도의 채택보다 우선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거법과 같은 제도는 매우 예민하고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선거법 개정은 종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총무원장을 모시는 일이 종단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대 사안이고, 다수대중의 뜻이 반영될 때 종단의 안정과 화합,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