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한 해가 저물어 12월이다. 개인적으로는 늘 10월말에서 11월 초에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겨 이 시기만 되면 마음속으로 조심하며 지낸다. 이제 미국에서는 그다지 계절의 변화가 없는 곳에 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가 주는 감정의 변화는 느끼지 못하지만 일본에서 지낼 때는 유독 11월만 되면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초한 달이었다. 이때만 되면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고가 나거나 아니면 아이가 아파서 늘 힘들었던 시기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11월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련의 계절인 것 같다. 사건 사고가 유독 이 계절에 많이 생기는 것을 보면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닌것 같다.
여기 캘리포니아는 한동안 춥고 안개가 자주 끼더니 요즘은 아예 한여름 날씨이다. 낮에는 반팔로 지내도 될 정도이다. 햇볕이 따뜻할 때 그래도 집에서만 지낼 수 없어 식구들과 작년에 잠깐 소개한 적이 있는‘가든 디자인 쇼케이스(Garden and Design Showcase)’라는 인테리어 전시장을 다녀왔다. 이 인테리어 디자인 쇼는 해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집을 선정해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실내를 꾸미는데 올해는 비버리 힐스에 자리 잡고 있는 그레이스톤(Greystone)이라는 저택이 선정되었다. 이 저택은 1927년에 석유 재벌 도호니가 그의 아들의 결혼 기념으로 약 19에이커에 지어준 집으로 이제는 영화와 TV 촬영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약 3년의 공사 끝에 55개의 방과 수영장, 테니스장과 정원 등을 갖춘 대저택으로 지어져 그후 도호니 2세와 그의 부인, 5명의 자녀가 이곳으로 들어와 살았다. 불행히도 이사를 한 후 약 6개월 후에 도호니 2세는 그의 방에서 총에 맞아 죽었는데 아직도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소유주를 거쳐 1975년부터 비버리힐스 시가 사들여 시민들의 파티나 결혼식 장소 등으로 이용하고 정원은 예약 없이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그레이스톤 저택은 비버리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한눈에 시가지 전체가 다 보이며 어느 방에서건 언덕 아래의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집의 외벽은 물론이고 지붕까지도 회색 돌로 지었기에 그레이스톤으로 불린 것이다. 집의 크기도 놀랍거니와 내부 장식의 하나 하나의 섬세함과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크고 화려한 집에서 산 지 6개월 만에 남편과 아버지를 비명에 보낸 이들 가족은 평생 이 화려한 집이 더 이상 행복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하게 다시 장식된 이 집을 보면서 인간의 행복은 물질만으로도 채울 수 없고 그리고 인간 모두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평범하고도 크나큰 진리를 또 한 번 가슴 깊숙이 체험했다.
여기도 이제 11월말부터 서서히 여기저기가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 때문이다. 이 시기가 미국에서는 가장 바쁘고 활기 넘친다. 거리마다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넘치고 더불어 많은 볼거리도 풍성하다. 미국인들의 크리스마스 장식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집 전체에 전구 장식을 하고 정원에는 온갖 장신구들을 설치한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집 가까이에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큰 크리스마스 트리의 점등식에 가보았다. 사진에서 보는 것은 80년 된 33미터 높이의 전나무에 만 개의 새장식과 만 오천개의 전구를 장식한 것으로 크기는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크고 LA 인근에서는 가장 먼저 불을 밝히는 의미있는 트리이다. 트리 앞에는 산타가 사슴을 타고 가는 모습을 만들어놓았고 또 그 앞으로는 음악에 따라 춤추는 분수가 있어 더욱 장관이다.
가로수마다 화려한 장식을 해놓았고 하루에 두 번 인조 눈을 뿌리기도 한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쇼핑몰인데도 매 시즌마다 다른 이벤트를 준비하여 온 가족이 다 함께 와서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인근 농장에서 재배된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장이 열리기도 한다.
초파일에 등을 밝히든 크리스마스에 불을 밝히든 이는 모두 복잡하고 시끄러운 인간 세상에 조금이라도 밝은 빛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요즘 한국 신문을 보면 부처님 오신날에는 교회나 성당에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절 앞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교회와 사찰에서 공동으로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해인지에 올해 마지막을 크리마스 트리로 사진을 싣고 싶었다. 유난히 복잡하고 재난이 많았던 올해에 그리고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 이 멋진 불빛에 잠시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