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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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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5년 12월 286호
해인사에 다녀왔다. 초겨울의 맵싸한 공기에 경내는 더욱 맑게 느껴졌고,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절을 찾은 이들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였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내 남편은 사랑하는 여자의 기호嗜好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절에 드나들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법당으로 나를 이끄는 멋진 도반. 둘이 나란히 서서 백여덟 번의 절을 하고, 새해의 안녕을 위한 기도를 접수하면서 고맙고 벅찬 마음이 꽉 들어차게 도와준다. 처음 만난 날부터 지극 정성이었던 남편은 나로 인해 속을 많이도 끓였다. 만사에 별난 인연 맺지 말고 혼자 지내다 혼자 가겠다던 나는 단단한 독신주의자였고, 그런 여자와 굳이 결혼을 하겠다던 이 남자는 그 뜻을 굽힐 여지가 없었으니. 결국 만난 지 세 해 만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 그의 아내가 된 것이다. 워낙 별나게 연애를 한 터라 ‘식’을 올린 후에도 열렬하게 살아갈지를 지인들은 궁금해 하곤 했는데, 남편이 장담했던 대로 결혼 후에도 달리진 것 없는 그의 정성과 보살핌이 고마울 뿐이다. 해인사를 내려와 산자락 끝의 식당에 들어 호박 부침개에 능이버섯국을 나누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나는 말했다. 108배 끝에 올리는 그의 고두례를 보면서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삼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고마움’에 건성이었던 내게 진심이나 감사 따위를 느끼고 배우라고 부처님이 이 사람을 내 곁에 보내셨는가 싶었다.
합천에서 서울로 차를 몰던 중에 하나뿐인 남동생과 통화를 했다. 제 일 때문에 대구에 내려와 있던 그는 “누나도 지금 대구를 지난다”는 말에 잠깐 얼굴만이라도 보자고 제안 했고, 주말 저녁의 밀리는 찻길을 뚫어 우리는 대구 시내로 들어갔다. 날이 추워서 모두들 차를 타고 나왔는지 고속도로나 시내가 두루 막힌 상황이었고. 예상치도 못하게 한 시간여를 길에서 보낸 후에야 동생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늘 보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굳이 예까지 와서 한 번 더 보려고 아둥거리는 우리 모습이 웃겼다. 8시에 일이 시작되는 동생을 만난 시각이 7시 55분, 겨우 5분 동안 자판기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오 분여의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고 길가다가도 보고 싶은 동생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짠했던 내 마음이 통했는지, 약속 시간에 늦었다며 허겁지겁 자리를 뜬 동생이 곧장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알러뷰’라고, 사랑한다고. 한 시간 반 이상 늦어진 귀경길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

“인연을 맺지 마라. 좋은 인연은 못 만나서 괴롭고, 나쁜 인연은 만나서 괴로워진다”는 말씀은 내 20대의 세월에 가득했었다. “찾아낸 줄 알았으나 본래 있던 것이었고, 사라진 줄 알았더니 본래 없던 것이었다”는 말씀과 함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길에 이런 저런 장식을 더하지 않고 훌훌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내 갖고 태어난 인연조차 고마운 것인 줄 모르고 살아왔다.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 앞서 말한 내 동생에 감사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렇게 냉랭했던 내가 간간이 연애를 해도 그것은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 그 이상의 의미나 감상이란 있을 수 없었다.
직업이 기자인 남편이 요리사인 내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하고, 몇 번의 거절 끝에 만나게 되고, 그의 노력이 시작되고 하면서 나는 진심에 무너졌다. 만남에 진심이 흠뻑 더해지니 ‘에피소드’로 끝날 수 없는 그 무엇이 생겨났다. 자꾸 나를 고맙게 만들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그의 마음은 일편단심 초지일관이었다. 그 마음이 시간에 익어 깊어지면서 ‘인연’이라는 말을 다시금 새겨보게 되었다. ‘인’이란 만물을 이루는 원인 가운데 핵심이며 ‘연’은 결과를 내는 데에 주변 역할을 하는 보조적인 원인이라는데, 즉 인과 연은 다 ‘인’인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또, ‘인연’에 의해 소멸되니 결국 인연은 그 실체가 없는 텅 빈 것이다. 그 인연에, 그 텅 빈 것에 너무 집착하여 살아도 문제겠지만 잠깐의 생生동안 생겨나서 내게 깨달음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나처럼 고마운 마음으로 대변되는 자비심을 얼핏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면 멋진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고마움은 시간에 익어갈수록 ‘불쌍해 하는 마음’이 된다. 내 부모도 불쌍하고, 내 동생도, 나를 아껴주는 남편도 불쌍하다. 전생에 이들에게 내 무슨 좋은 덕을 베풀었길래 이번 생에 이리도 나의 깨달음을 돕는가 싶다.

삭힐수록, 시간에 재울수록 맛이 나는 발효음식처럼 2005년 12월에 느끼는 나의 고마움이 세월에 더 깊어지기를 빌며 일본식 청국장인 낫또를 섞은 두부 버거를 준비해 본다. 으깨어 물기를 꼭 짠 두부에 낫또를 섞고 간장과 과즙, 양파 즙으로 간을 해서 굽는 것이다. 살이 찌지 않으면서 포만감을 주는 요리. 간장이나 낫또와 같이 숙성된 콩으로 만드는 심플한 맛이 좋다. 이번 생의 인과 연으로 내 마음을 고맙게 물들이는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 봄직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