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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으로 배가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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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5년 12월 286호
이른 겨울 아침 찬바람을 이마에 맞으며 몸과 마음을 고요한 곳에 두는 즐거움에 있어 이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또 긴긴 겨울 밤 찌-잉하는 정적을 배경으로 창호에 비친 대 그림자와 그 대나무에 사락사락 내려앉는 흰눈 오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진정 홀로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참으로 함께 하여 즐거운 일이 있긴 하지만 또한 우주 한가운데 고요히 나 자신을 홀로 두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인 것을 아는 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산길에 들어서 이정표를 그 갈 길로 삼되 이정표가 곧 산의 정상은 아니리. 산길을 오르는데 내 발이 아닌 다른 이의 발을 빌려 갈 수도 없고, 다른 이의 눈을 빌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음을 아는 데 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위산 영우山 靈祐(771~853) 스님께서 하루는 향엄 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백장 스님의 처소에 살면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고 하던데 이는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이해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줄 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 그대의 본래 면목에 대해 한마디 말해 보아라.”
향엄 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방으로 되돌아와 평소에 보았던 모든 책을 뒤져가며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끝내는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런 뒤로 향엄 스님은 여러 번 스님께 가르쳐주시기를 청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할 것이네. 무엇이든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 일일 뿐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향엄스님은 이윽고 평소에 보았던 책들을 태워버리면서 말하였다.
“금생에서는 더 이상 불법을 배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저 멀리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는 밥중노릇이나 하면서 이 몸뚱이나 좀 편하게 지내리라.”
이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하직하였다. 곧바로 남양南陽 지방을 지나다가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탑을 참배하고는 마침내 그곳에서 쉬게 되었다.
하루는 잡초와 나무를 베다가 우연히 기왓장 한 조각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딱”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단박에 깨닫게 되었다. 향엄 스님은 급히 거처로 돌아와 목욕 분향하고 멀리 계시는 스님(위산)께 절을 올리고는 말하였다.
“스님의 큰 자비여! 부모의 은혜보다 더 크십니다. 만일 그때 저에게 말로 설명해주셨더라면 어찌 오늘의 이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게송을 읊었다.

딱 소리에 알던 바를 잊으니 一擊忘所知
다시는 닦을 필요 없게 되었네. 更不假修持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動容揚古路
초췌한 처지에 빠질 리 없어라. 不墮憔然機
곳곳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處處無迹
빛과 소리를 벗어난 몸짓이니, 聲色外威儀
제방의 도를 아는 이들은 諸方達道者
모두가 상상기上上機라 하더라. 咸言上上機

소설재巢雪齋를 그린 그림은 일본 엔가쿠지(円覺寺)의 선승이었던 코우사이(皓采)의 서재였다고 전한다. 무로마찌(室町)시대 작가인 겐코쇼케이(賢江祥啓)가 그린 것으로 당시 유명한 선승 4인이 화제를 붙여 써 넣었다.
그림을 보면 겨울날 눈 덮인 산은 손에 잡힐 듯이 눈 앞에 서 있다. 눈을 덮은 산은 곧 그 기골氣骨이 쉽게 드러나니 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때가 바로 겨울이다. 눈 덮인 먼 산을 이마에 닿을 듯 가깝게 그린 것은 겨울의 이러한 이치 때문이기도 한데 충분히 깊은 곳까지 얼었음직한 냇가에 자리 잡은 초라한 모옥茅屋에는 홀로 있어 진정한 즐거움을 알 만한 이가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은 옷을 두껍게 하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져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밝은 눈을 만드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화면 전체가 명료하게 처리된 것과 바위의 표현이 굵직하게 표현된 것도 그러한 이치가 충분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15세기 일본의 화단은 조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소설재와 멀리 보이는 산이 대각선으로 자리 잡은 구도라든지 모옥이 의지한 바위를 흑백의 강한 대비로 처리하는 점 등은 우리네 그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단의 경향은 그러하였으나 우리네 불교는 서 있는 자리가 불안하고 적어지는 때였으므로 불교의 교류까지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해와 달은 하루도 머물지 않고 뜨고 지고 강물도 쉬지 않고 흐르는데 마음은 그 강물을 따라 멀리 가보기도 하고 일월日月을 타고 오가지만 올해의 내 발걸음은 제자리만 맴돌고 말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산스럽게 갈 지之자였으나 그 발걸음이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보기에도 참으로 기세 좋은 산을 앞에 두고 주변만 맴돌았으니 언제나 그 산을 오르게 될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