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분야를 내가 가는 길로 정하여 걸어온 지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간다. 이 길을 걸으면서 극적인 변화로 상징되는 패러다임의 이동을 몇 차례 목도하였다. 그때마다 변화의 동인이 자연의 원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부모와 자식의 연을 그 안에서 돌아볼 수 있음에랴…….만물의 순환은 어긋남이 없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오겠지. 가을의 상념이 다르듯 겨울에 느끼는 시각도 새롭기는 마찬가지다. 김장철이 시작되는 이즈음 배추며 무, 고춧가루와 각종의 젓국들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겨울의 반찬과 월동을 위해 들어선 리어카와 동네 아주머니들로 시끌벅적한 익숙한 골목 안 모습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와 같은 정겨운 풍경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변화를 몰고 온 실체에 대해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김치냉장고라는 결론에 이른다. 한국인으로서 유구하게 이어 온 김장철이란 전통을 365일 김장 김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변화시킨 패러다임의 이동(Paradigm Shift)을 주방 한 켠에 놓여 있는 전자제품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흔이 넘도록 이 세상에서 독립된 주체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항상 의지하던 아버지이다. 내 어머니의 남편이었고, 세 남매의 아버지였으며, 직장에서는 초등학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선생님이었고, 텃밭을 가꾸는 농부였으며,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는 미장이이고 목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이웃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작은아들로 온갖 역할을 다 하였지만 작은아버지로서 오직 원망의 대상이 되어 그 비난의 화살을 묵묵히 견디며 사셨던 분이다. 화가 나도 소리치지 않았으며, 꾸중하실 때도 듣는 이의 입장에서 말씀하셨고, 모든 경우에 본인의 주장과 말을 아끼셨다. 보여주시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배움을 베풀어주셨던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내 곁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생활인이 못 되었기에 집안에 못 한 개 박을 줄 몰랐고, 도회생활에서의 잦은 이사 때마다 늘 아버지가 함께 하였다. 내가 소중했기에 밖의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기보다는 경쟁을 우선하여 성과와 결과를 요구했으며, 남을 이해하기에 앞서 주장을 펴고, 화를 삭이기보다는 더 잘 화를 내는 특성으로 함께 하기보다는 홀로 걷게 된다. 비움이 부족하여 묵묵히 한 곳에 천착하기보다는 밖을 기웃거려 저를 드러내려 하였고 느림을 이야기하면 속도로 맞섰다. 하물며 홀로 계시는 어머니에게조차 정성이 부족하다. 거죽도 끝내 닮지 못하였거늘 그 마음에 닿을 엄두를 낼까? 아날로그적 삶보다는 디지털적 가치관으로 내 앞의 모든 것을 재단하였기에 나에게는 남이 들어올 자리가 적은가 보다. 이제야 이 생에서 삼만 육천 날도 채우지 못하는 내 영혼의 가엾음에 눈이 떠진다.
컴퓨터 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패러다임의 이동이 자주 이야기된다. 특히, 객체지향(Object-Oriented) 기술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유전인자를 전달하듯이 객체지향 기술에서 상위에 존재하는 객체는 하위의 객체에게 자신의 행위적 요소와 속성적 요소를 모두 계승(Inheritance)해줌으로써 새로운 객체는 자신의 고유한 행위와 속성만을 첨가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을 얻게 된다. 이때 상위에 존재하는 부모 위치의 객체 모델이 완벽할수록 새로이 부가되어 탄생하는 자식이 되는 객체 모델도 위로부터 계승받아 완전성을 부여받는다. 역으로 부모 객체가 불완전하면 자식이 되는 객체도 부실하게 되어 전체 소프트웨어의 품질과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정보화의 영역에서 부모 자식간 인연의 고리가 스며들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 새삼 재미있다.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변화도 어디로부터 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이가 아파트 계단에서 울리는 제 어미의 신발 끄는 소리를 반겨하는 모습을 보며 저녁 무렵 골목을 돌아 집으로 오시는 아버지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기를 고대하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난다. 구두 뒤꿈치가 먼저 닿으며 내는 독특한 소리로 아버지임을 알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늦은 귀가 길에서 무심코 내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너무나도 낯익은 소리에 가만 멈추었다 다시 가고 멈추었다 또 가본다. 분명 그 소리다. 모데라토의 속도로 울리는 뚜두 버-억- 뚜두 버-억- 소리. 사람이라는 객체는 걷고, 나이를 먹고, 사랑하며, 또한, 부모가 있으며, 그만의 신체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자식을 통해 유전적 특성을 면면히 계승한다. 내 아버지와 닮지 않은 길을 걸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길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가 너무나 닮았음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뒤에야 깨닫는다. 내 아이도 이 발자국 소리와 리듬을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했으면……. 그리하여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영원히 잇닿아 있음을 어느 날 그의 길 위에서 알고 인연의 감사함과 삶의 비의에 머리 숙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