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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함 없이 설하니 들음 없이 듣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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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05년 12월 286호
삼개아랑총장성三個兒郞摠長成하니
대가장본각경영大家將本各經營이라
기간소절형혐제其間消折兄嫌弟하니
야유여전제원형也有餘錢弟怨兄이로다
세 아들이 모두가 장성해지니
제각기 밑천 잡아 살림을 차렸네.
그 뒤 유산을 나누려니 형이 아우를 싫어하고
남은 돈 때문에 아우가 형을 원망하네

선원청규를 만든 백장 선사께서 결제대중들에게 일렀습니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빨리 한마디 하거라.”

그때 위산영우가 말했습니다.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선사께서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자 백장 선사께서 말했습니다.
“그대에게 말해주기를 꺼리는 것은 아니나, 뒷날 우리 법손들을 다 죽일까봐 걱정된다.”

그러자 오봉상관五峰常觀이 말했습니다.
“선사께서도 입을 다무십시오.”
백장 선사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대를 간절히 기다렸다.”

또 곁에 있던 운암담성이 말했습니다.
“제가 말하겠으니 화상께서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백장 선사가 다시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빨리 한마디 하라”고 하니
운암이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계십니까?”
백장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법손들은 다 죽었구나.”

백장 선사 회상에서 위산 오봉 운암 화상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모여 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뒷날 후인들은 이를 일러
‘위산청도山請道’ ‘운암유야雲巖有也’ ‘오봉병각五峰倂却’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목구멍과 입술을 사용하지 않고 한번 말해보라는 그 말에 대하여
목구멍과 입술을 사용하여 저마다 나름대로의 견해로 살림살이를 보태온 것이 선가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냉정하게 보면 법을 설하는 자도 말이 없었고 보여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법을 듣는 자 역시 들음도 없었고 얻음도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들은 이것을 두고서 ‘불설설不說說 불문문不聞聞’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설함 없는 가운데 설함이 있고 들음 없는 가운데 들음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결제법문을 산승도 설함 없이 설하고 따라서 결제대중은 들음 없이 들어야 합니다.
대체로 종사가 납자를 지도하는 것은 못과 쐐기를 뽑아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납자가 안목이 없으면 못과 쐐기를 뽑아주고 있는데도
못과 쐐기를 뽑아주는 것조차 모르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또다른 못과 쐐기를 뽑아주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운문 선사는 이렇게 대갈일성을 하였던 것입니다.
‘평지에서 죽은 놈들이 수도 없다. 가시덤불을 지나갈 수 있는 놈이라야 제대로 된 놈이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항상 가시덤불을 들고서 납자들을 시험해 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언구로는 공부인을 제대로 가려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눈가죽이 제대로 뚫려 있는 납자라야 가시덤불이라는
격외格外의 언구 속에서도 그 낙처落處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담판한擔板漢, 즉 외골수들은 말이라는 가시덤불에 걸려서 제대로 살아남지를 못합니다.
안목이 있는 납자라면 물음 속에 이미 답이 있고
그 속에 길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칼을 두 손으로 움켜지고 있는데
휘두름을 당하더라도 칼끝도 상하지 않게 하고 손도 다치지 않게 하는 법입니다.
가시덤불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결국 가느다란 실오라기에 걸려서도 그것을 끊어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저 누에고치처럼 가는 실에 뒤엉키게 되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살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어 절대로 빠져나오지를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는 것처럼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는 것과 똑같다고 할 것입니다.

백장과 위산의 대화는 곁에서 보는 이가 빙그레 웃을 일이요,
이는 노파심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호랑이가 머리에 뿔을 이고서 풀밭을 나선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백장과 오봉의 거량은 첫화살이 태양의 한복판을 뚫은 것이요,
만 사람이 모인 속에서 우뚝한 푯말을 빼앗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용과 뱀이 진중에서 적의 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백장과 운암이 주고받은 말은 물에 들어가서 또 진흙탕에 두세 번 빠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황금털빛의 사자는 절대로 땅에 앉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백장 역시 마치 선물을 받고서도 벌을 주는 것과 같고 귀를 막고서 방울을 훔치는 격입니다.
세 사람의 이러한 대꾸로 인하여
백장 역시 풀밭으로 함께 뛰어든 격이니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법진 일 선사는 이렇게 염拈한 것입니다
“세 사람 일은 그만두고
누군가 홀연히 나에게 ‘목구멍과 입술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하겠소?’라고 묻는다면
‘내가 입을 열기만 기다리시오’라고 할 것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한마디는 참으로 우리들을 통쾌하게 만드는 말이요, 천리마를 더 빨리 달리게 만드는 채찍입니다.

결제대중은 단박에 깨치는 길을 알려고 합니까?
그 답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있습니다.
말하기 이전에 이미 있다고 하니 어떻게 찾아야 하겠습니까?
이 일은 결정코 언어에 있지 않습니다.
이미 언어에 있지 않다면 그럴 때에는 어찌해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동안거 한 철 동안 우리의 법손들을 다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언어 이전의 그 본래 마음자리를 참으로 간절하게 목숨을 걸고서 용맹정진하여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건곤일통물요와乾坤一統勿訛어늘
정족삼분사유다鼎足三分事愈多라
뇌득백장능파정賴得百丈能把定하여
불교용이동간과不敎容易動干戈로다
건곤이 하나로 통합될 때는 시비가 없더니
솥의 세 발같이 나뉘니 일이 더욱 많아졌네.
다행히도 백장이 있어 잘 가라앉히니
쉽사리 싸움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네.

불기2549(2005)년 동안거 결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