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성공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생명복제 논란이 시간이 지나면서 수그러드는 것 같더니만, 다시 2라운드가 시작된 것 같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지난 10월 5일 100억원을 투입해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생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천주교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 지난 10월 19일 우리 나라에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문을 열었는데, 이 또한 생명복제 논란을 달굴 요소가 되기에 족하고도 남을 사건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줄기세포 허브는 인간 줄기세포의 전 세계적 협력 연구와 교육, 줄기세포주 축적 등의 중심 역할을 한다. 미국과 유럽에 개설 준비 중인 해외지역 줄기세포은행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인간 줄기세포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인 협력을 촉진할 계획이다. <한겨레, 2005. 10. 19>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불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사람들은 황우석=불교로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입적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황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보살행이라고 격려한 적이 있었고, 황 교수 또한 법장 스님의 빈소를 누구보다 먼저 찾아 법장 스님이 정신적 후원자였음을 밝혔다. 이러했으니 세상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어긋난 것 같지는 않다.
생명윤리 논란은 쉬이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은데, 불교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할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말없음으로써 불교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상사람들은 불교의 입장을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입장이라는 결론만 듣기보다는 불교의 교리와 교리 해석의 측면에서는 생명복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풀이하는지 살펴야 한다.
《불교와 생명윤리학》(불교시대사, 2000)은 생명복제에 대한 불교의 견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고 있다. 외국학자의 저작인 점이 아쉽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한 권의 책자로 묶어진 거의 유일한 성과물인 것 같다. 저자는 데미언 키온(Damien Keown), 일본의 불교학자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 영국의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역사문화학과 소속 인도종교학 강사, 유명한 팔리 텍스트 소사이어티(Pali Text Society)의 정회원, 왕립 아시아협회 이사. 저서로 《불교 윤리학의 본질》이 있다. 이 정도면 저자가 불교 문헌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매우 정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세 가지, 즉 인간과 인간 이외 생명과의 관계, 생명의 시작, 태아 실험에 대한 시각인데, 이를 살펴봄으로써 불교의 생명윤리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불교적 맥락에서 볼 때 생명이란 무엇인가? 모든 형태의 생명은 동등하게 평가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생명의 존중은 불교적 가르침의 핵심이다. 생명은 열반에 이를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본질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단순히 생명 자체, 즉 생명의 살아 있음이 아니라 정신적 목적을 갖는 삶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모든 형태의 업의 삶은 본질적 가치를 갖지만 그들이 가치면에서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동물이 아무리 지적이고 인간 존재가 아무리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동물도 인간 존재보다 더 귀중할 수는 없다. 다만, 업과 무관한 삶(동물)은 도구적 가치를 지니는데, 도구적 가치는 업의 삶(인간)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제공한다.(80~97쪽)
생명의 시작
데미언은 불교적 사고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개인에 의해 영위되는 일련의 생명들에게서 최초의 출발점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붓다의 설법을 기록한 맛찌마 니카야, 붓다고사의 해석서, 《티벳 사자의 서》 등을 근거로 생명의 시작을 수정受精으로 본다. 붓다는 어린이를 낳는 단계를 넷으로 나눈다. 수정기간, 임신, 출생, 그리고 양육이 그것이다. 중간 단계의 존재(중음신)가 자궁 속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 중 첫 번째 기간 동안이며, 이는 새로운 개인적 삶의 원점이 된다.(143쪽)
태아 실험에 대한 시각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태아실험은 사실상 부당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태아에 대한 파괴적 실험은 생명이란 기본적 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과 첫 번째 계율의 파기를 나타낸다. 그 연구의 목적이 이론적인 지식이라면 그것은 생명이 지식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기본적인 선의 도구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연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의 고통에 대한 자비심과 병을 제거하려는 욕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다면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한 존재에 대한 자비심은 다른 존재의 죽음을 야기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개념은 보편적인 자비심의 예라기보다는 선별적 자비심의 예이다.(207쪽)
데미언의 주장에 의존하여 생명과학의 최근 성과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정리한다면,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생성된 수정란 또는 태아를 대상이나 도구로 한 실험은 비윤리적이다. 그렇다면, 황 교수팀의 연구는 수정란을 연구의 대상이나 도구로 삼았는가가 열쇠가 된다. 황 교수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수정란을 만든 것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연구 성과에서 나온 배아줄기세포는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세포치료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안 교수는 천주교 신자이며, 10월 26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시상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이런 논쟁에 비전문가의 견해는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안 교수가 밝힌, 체세포 이식을 통한 수정란을 인간생명의 시작인 태아로 볼 것인지, 또 그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안 교수가 밝힌 황 교수팀의 연구 방법은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정란이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신체의 특정한 세포가 되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이 빠르게 진전되는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불교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유성생식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 자궁, 썩은 물질, 자연발생, 이 네 가지를 생명이 생겨나는 자궁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여타의 종교와 매우 다른 인식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