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 한 아이가 티베트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갠딘둡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나던 날 밤에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식구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이를 숨겨두고 도망갔지요. 다음 날 돌아와 보니 아이는 살아 있었습니다. 검은 까마귀 한 쌍이 아이를 지키고 있었지요. 그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신 초대 달라이라마였습니다.『티베트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입적한 후 다시 환생해 이 세상에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달라이라마의 사후 몇 년이 지난 뒤, 그 나이 또래의 소년들을 찾아나서 몇 가지 시험을 거쳐 쿤둔을 결정한다. 가령 전생에 쓰던 물건들과 다른 물건들을 나열해놓고, 자기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테스트를 거쳐 쿤둔으로 확정된 라모는, 가족을 떠나 라싸의 포탈라궁으로 가서 살며 지도자로서의 교육을 받게 된다.
쿤둔은 아직 어려서 정치문제는 섭정에 맡긴다. 이웃 나라인 중국이 공산화되고, 마침내 티베트를 무력 침공한다. 속수무책인 티베트는 중국에 합병되고, 쿤둔은 제 14대 달라이라마로서의 즉위식을 마치고 인도와의 접경지역으로 피신한다.
국민을 염려하여 다시 라싸로 돌아간 달라이라마는 모택동과의 회동을 통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지만,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의 구호 앞에 무력함을 느낀다. 고심 끝에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달라이라마가 망명을 고심하던 중 신탁을 받게 되는데, 거기에는 여의주가 서구에서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예언이 들어 있었다. 그 예언은 적중하여, 달라이라마가 비록 고국인 티베트에서는 떠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티베트불교는 오히려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끄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유럽에서 티베트불교는 서구식 합리주의와 물질문명에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며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다.
한편 환생한 달라이라마를 다시 찾아내는 내용이 퍽 인상적이다. 과연 환생이란 어떤 것일까? 윤회는 무엇인가? 달라이라마가 환생한 것이라면, 무언가 윤회의 주체로서의 불멸의 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을, 불교에서는 물 속에서 달을 건지려는 것(水中捉月) 거울 속에서 머리를 찾으려는 것(鏡裏尋頭) 배의 표식을 좇아 물속에 빠진 검을 구하려는 것(刻舟求劒) 소를 타고 가면서 소를 찾으려는 것(騎牛覓牛)에 비유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교리는 무아설無我說이다. 무아설이란, 그 어디에도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나란 없다는 말이다. 한편 이 말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가변적 존재로서의 나마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분명히 바로 지금 여기 존재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 하지만 그 나는 찰나 생멸하는 나이다.
우리의 몸은 하루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생멸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조합으로서 순간순간의 나를 떠나서 영원불멸한 존재로서의 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무아설이다.
그렇다면, 윤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를 들어보자. 고요한 연못 한가운데 돌을 던지면, 그 파문이 가운데서부터 가장자리로 물결치며 전달된다. 이때, 가운데 있던 물 그 자체가 가장자리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파동이 전달될 뿐이다.
윤회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영원불멸한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가 있어서 내생으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육신이 죽은 후 그 육신에 담겨져 있던 정신적 파동이 다음 생으로 전이된다고나 할까?
이렇게 보면, 달라이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후신이라는 말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즉 관세음보살이라는 고정불변의 주체가 있어서 윤회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갖고 자비행을 하는 이가 바로 관세음보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보살이라는 결정된 존재가 있어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을 하는 이가 바로 보살이라는 말이다.
대자대비심이라는 파동이 전이되어 금생에 여전히 대자대비행을 하고 있다면,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달마, 이 영화를 말한다.
천 자나 되는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한 물결 언뜻 일어나매 만 물결이 따라 일어나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고기 물지 않으니
배에 가득 공연히 달빛만 싣고 돌아오는구나.
千尺絲綸直下垂 一波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금강경오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