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본 스님은 해인사 환경위원장이다. 교구에서 환경위원회가 있는 곳은 해인사가 유일하다. 환경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과제이기에, 사찰 역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분야이다. 종본 스님은 교구 종회의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환경뿐 아니라 종단의 교육, 포교 등 제도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틀이 만들어지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환경위원장 직전에도 해인사에서 교무와 사회국장을 맡아 승가교육과 포교, 대사회적인 활동들을 펼쳐왔다.
스님은 특히 출가자들의 위상 정립을 위해 행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지금처럼 6개월 행자생활하고 20일 교육기간을 거쳐 사미계를 주어 선원이나 강원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자 기간을 4~5년으로 늘려서 어느 정도 사상과 이념이 정립한 후에 승복을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인사제도 역시 종단에서 강원 기수별로 인적 관리를 통해, 행정 각 분야에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상좌제도를 통한 문중 관념은 많은 병폐를 낳고 있어요. 은사맥, 본사맥 등 파벌을 조성함으로써 종단의 발전과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요.
그러한 생각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스님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란다. 의외로 많은 스님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고, 종단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는 것에는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제도의 개혁과 보완 등에 관심을 갖고 있기에 자기 수행에는 비중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스님은 하화중생下化衆生만이 아니라 상구보리上求菩提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결국 출가자의 길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 무엇인가가 아무리 유혹적이라 해도 깨달음으로 향한 길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으로 정진 중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업이 다르기에 방법에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참선을, 어떤이는 독경을 또 어떤 이는 염불의 방법을 택한다. 스님은 기도를 택했다. 아미타기도를 통해 정토를 발원한다.
다른 이들이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나는 기도를 통해 정토를 발원하고 내생을 확신하지요.
출가한 것은 군대를 갔다와서였지만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있었다.
고향이 전북 부안으로, 어려서 부모님들이 논밭에 일하러 가면 집을 혼자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왜 그리 상여가 많이 나가던지, 어린 마음에 상여를 보며 누구나 상여에 실려나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는 저 상여에 실려나가지 않겠는가 하는 데까지 이르러 울던 기억이 있다. 나고 죽음에 대한 번민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고 할까?
스님은 자신의 출가 원동력을 거기서 찾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 어릴 때라는 것은 결국 전생과 연결이 돼 있는 것이니까.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생사일대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몽환포영與夢幻泡影이라 했듯이 깨달음을 증득해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하기에 더 열심히 기도한다.
그래서였을까? 장묘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도들이 절을 찾는 이유는 참배도 있지만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해 천도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사찰은 앞으로 이런 사후문제에 좀더 신경써야 한다고 본다. 납골당을 만드는 일도 신중하게 고려했던 적도 있다.
납골문화를 보기 위해 일본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러나 일본은 납골당을 공원식으로 조성해 일반인들의 거부감을 없앤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묘원처럼 장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바람직하게 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도심에 빌딩식으로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러나 가장 긍정적인 것은 납골을 아예 뿌려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위패만 모시는 것이에요. 인천 용화사에 가면 법당 안이 위패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런 방향으로 가는 절이 많아야 한다고 보지요.
기도를 시작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해인사 강원을 다니다 몸이 안 좋아 고성 운문사에서 단식을 했던 적이 있다. 도광 스님 상좌 종견 스님이 단식을 지도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1년 정도를 거기서 지냈다.
거기서 한 스님으로부터 천일기도 얘기를 들었다. 출가를 했으니 천일기도 한 번은 해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그것이 와닿았다.
강원을 졸업하자마자 홍제암에서 천일기도를 했다. 그후 선방에 있다가 91년부터 95년까지 해인사 대구포교당인 대광명사 주지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천일기도를 했고, 이어서 96년부터 주지를 지낸 서울 경국사에서도 천일기도를 했다.
그러니까 스님은 지금까지 천일기도를 세 번 했다. 어떤 소임을 맡아 새로이 자리 잡을 적마다 천일기도를 한 것인데 9년 동안 기도를 한 것이다. 스님의 법랍이 30년이니 출가후 1/3을 기도하며 보낸 셈이다. 그리고 스님은 앞으로도 천일기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기자에게도 기도를 권한다.
자기가 바로 서야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기도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안정시켜 줌으로써 어떤 일이든 확신을 주고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도 리듬을 잡게 해준다고.
알고는 있지만 사실 실천이 쉽지 않다. 살고 있는 아파트 가까이에 절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자 스님은 집에서 할 것을 권하면서 엉뚱하게 절반이 어디서 온 말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절반은 신라시대 경주에서 나온 말이에요. 경주 서라벌에 마을이 있으면 100가구 중 50가구가 절이라는 이야기지요. 그 말은 우리도 예전에는 오늘날 태국이나 스리랑카에 가면 집안에 불상을 모셔두듯 집안에 불상을 모셔놓고 신앙행위를 했다는 것이지요.
기도를 많이 해서인지 스님은 참으로 순박해 보인다. 실제 성격도 그러하냐고 하니 보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참회가 날카로운 구석을 무디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을 정화해가고 있는 스님과 정화를 통해 거듭나고 있는 해인사의 환경이 참 잘 어울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