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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없고, 없어도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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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장영승/아름다운가게 특수사업국 2005년 11월 285호
인생 뭐 있어?
최근 어느 정신없는 개그맨 덕분에 유행어가 되어버린 말이다. 조그마한 아이들까지도 조물조물 외우는 통에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 말. 인생 뭐 있어?
사실 무상無常이란 주제로 글을 쓰라는 요구는 나에겐 참으로 짓궂은 것이다. 비록 많지 않은 나이에 많은 일을 그것도 끈질기게 겪어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아직은 삶도 짧고 더욱이 고민의 깊이가 없어서 무상이란 말뜻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상을 주제로 무언가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약속한 글은 써야겠기에 이젠 굳은살이 생겨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나라는 인간의 삶을 요약해봤다.
하라고 하니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했고 운좋게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시절엔 공부보다는 학생운동을 했고 결국 상당 기간 교도소에 있어야 했고 그 때문에 취직이 안 되어 회사를 창업했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운으로 회사는 커져갔지만 감당을 못하게 되었고 또한 믿었던 친구 때문에 아파했고 점차 회사는 어려워졌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고 회사 직원들을 떠나보내야만 했고 최근엔 교통사고로 온 몸이 부서져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고 지금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어느 시민단체에 있는….
그런데 이렇게 과거의 일을 떠올려봐도 다행히 몸도 마음도 안 아프다. 철심이 박혀 있는 무릎만 좀 시릴 뿐이다.
사고 당일 날 의식이 깨어나서 고맙게도 난 제일 먼저 나의 상태보다도 나 말고 다친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사실 다친 사람에 대한 걱정보다는 떳떳하지 않은 생활을 해왔기에 혹시 나로 인하여 다친 사람마저 생겼을까 하고 두려웠었기 때문일 거다. 다행히 난 술 취한 운전자가 몬 자동차에 일방적으로 받힌 덕분에 나만 다칠 수 있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힘겨웠던 2차수술이 끝나고 잘못하면 어느 가수처럼 하반신 마비가 될 수 있고 잘 되어도 평생 장애자로 살 것이라는 의사의 무덤덤한 말을 들었을때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그 이후 쉽게 병원생활에 익숙해졌고 매우 비관적인 의사의 우려와는 달리 몸은 호전되어 서둘러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재활치료 덕분에 요사인 다리는 절지만 그래도 정상인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다.
다리를 절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면 당연히 질문을 받는다. 다시는 오토바이 안 탈거죠? 죽다가 살아났는데 지가 또 타겠느냐? 라는 뜻일 게다. 그럼 난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다소 뻔뻔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 생각대로 오토바이를 안 탔으면 사고가 안 났을까? 앞으로도 오토바이를 안 타면 사고가 안 날까? 그럼 어머님 말씀대로 좋은 대학에 안 갔으면 학생운동을 안 했을까? 회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망하지도 않았을까? 친구를 믿지 않았으면 배신도 안 당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으면 아프지도 않았을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번뇌도 고통도 없었을까? 그래서 결국 없는 건가? 없는게 좋은 건가?
몸을 못 가누는 중증환자로 혼자 똥오줌 가리는 것이 하루 중 제일 중요한 고민과 일과가 되었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 후 어떤 시민단체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은 사람들로부터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받아 세탁과 수선을 하고 그것들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으로 다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하는 곳으로 많은 기증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발전을 해가고 있는 단체이다. 그 단체에 몸을 담게 된 까닭은 사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 그간 함께 해왔던 저주스러운 사고들도 끝이 나고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막연하고 이기적인 이유때문이었는데 그러한 나의 결정을 마치 대단한 일인 것처럼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월급쟁이 사장을 해도 연봉 수억원은 받을텐데 왜 시민단체에?라고 경제논리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운동하는 삶을 살 모양이구나 하고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최근까지 같은 업계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은 내가 그런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반문한다. 괜히 그곳에 숨어 있지 말고 차라리 따로 돈을 벌어 그 돈을 기부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산수계산으로는 얼핏 그럴 듯한 논리다. 그런데 그런가? 현재는 다리를 절면서 하루하루 대단한 결심과 이기적인 도피라는 상반된 잣대로 나를 재단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삶이 팍팍할 때는 보통 왜 사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왜 사나? 왜 시민단체에 들어갔고 하필 오토바이는 왜 탔으며 회사는 왜 창업했나? 친구는 왜 믿었고 사랑은 왜 했나? 도무지 모르겠다. 이 글을 사무실에서 눈치보며 오전 내내 붙잡고 쓰고 있으면서도 모르겠다. 정말 오직 모를 뿐이다.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또 왜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리고 떠오르는 일갈…
인생 뭐 있겠어? 그냥 직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