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아, 하늘이 높고 바람이 분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신진주 / 서울 2005년 11월 285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치열한 삶의 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나에게 이르는 일인지 생각할 틈 없이 그렇게 몇 년을 내달리다가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지켜본다. 그렇게 뒤돌아보니 바람 불면 흩어지는 먼지처럼,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기차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는 시작된다.

길 위의 사람들에 대한 사유
의미 모를 중얼거림을 반복하며 밤길을 휘젓는 한 사내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고는 꾸벅, 죄송하다 한다. 미처 대답할 틈 없이 사람들 사이로 흩어지듯 공기처럼 사라진 그 사내의 지독한 악취는 손으로 코를 쥐어 비틀어도 계속 콧등을 휘말고 있었다. 흐트러진 자세와 지저분한 곳에 뒹군 듯 보이는 옷가지에 묻은 흔적들, 도심 속 늦은 밤이면 쉽게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술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별한 의심 없이 그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쉽게 생각한 채 그 사내를 잊고 수많은 사람들의 숲을 미로처럼 지나쳤다. 그 도시의 숲에는 부쩍 날카로워진 바람을 피해 외투를 부여잡고 빠른 걸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홀로 뛰는 사람,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걷는 연인, 횡단보도 앞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껌을 강제로 파는 할머니, 갈 곳을 잃은 듯 번쩍이는 상점 앞을 몇 번이고 서성이는 노숙자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해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쫓아 각자의 사연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간다.
나와 부딪혔던 그 사내의 일상은 어떨까. 바람 빠진 폐타이어처럼 늘어진 어깨의 무게만큼이나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사내는 한 가족의 든든한 가장이자 토끼 같은 아이들의 슈퍼맨 같은 남편일 것이고,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원일 것이다. 그날따라 기분 좋게 회식을 했을 수도 있고, 속이 상한 일이 있어 과하게 술잔을 기울였을 수도 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타인이기에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듯, 무관심으로 그네들을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바로 나의 모습, 나의 아버지의 모습, 나의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가슴 아래 통증과 함께 울컥거리는 슬픈 감정은 주체할 수가 없다. 우리 삶은 그래서 늘 슬프다. 비슷하게 살아가는 일상들. 다른 관념과 사유가 들어올 작은 틈의 여유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치열한 삶의 전장의 반복으로 우리는 세월을 보낸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 나름의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꿈꾸고 사랑을 이루고 추억을 만들지만, 가슴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늘 존재한다. 또는 그것 또한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끝을 맞이한다.

현대인과 밥벌이
가장 무서운 것은 습관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생각지 못한 채 습관이란 굴레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섭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이다. 마치 사자에게 쫓기는 양떼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뛰고 걷는다. 갖가지의 표정을 싣고 엄청난 구두 소리를 내며 우르르 내달린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족한 잠에 취해 머리를 흔들며 단잠에 빠져 든다.
아, 슬프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에세이에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밥벌이의 슬픔에 대해 탄식하는 글을 썼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그렇다. 사실 밥벌이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밥벌이를 해야만 한다. 삶은 그렇게 치열하고 잔인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 끝까지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촛불처럼 그렇게 나를 태우다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끝이다. 힘겹게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보지만 그 끝엔 빛이 아닌 또 다른 어둠이 있는 것이다. 그 끝까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그 어둠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참 슬프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우리의 목표가 밥벌이는 아닐 것이다. 삶은 그렇게 치열하고 고독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지속된다.
죽음 앞에서도 꿀은 달다
너무 낮게 있으면 넓게 볼 수 없듯이, 우리는 좀더 넓게 보기 위하여 좀더 높게 서 있을 필요가 있다. 어느 지역에선 엄청난 재앙으로 콘크리트 속에 파묻힌 아내를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으며, 어느 지역에선 가족이 마실 물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물을 찾기 위한 힘겨운 여행을 나서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돈이 가장 큰 행복이고, 어떤 이에게는 물이 가장 큰 행복이며, 어떤 이에게는 당장 먹을 끼니가 가장 큰 행복이다.
그렇담 우리의 행복은 무엇일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평생을 가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꿀은 달다 하지 않았나. 밥벌이가 괴롭고 삶의 끝이 무無라 할지라도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사는 것. 그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아, 하늘은 높고 바람이 분다. 이제, 또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