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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절실하고 구구절절한 애달픔까지… 무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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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효민 2005년 11월 285호
효민 / 대구불교방송 음악이 있는 풍경소리 진행

세월 속에 봄은 가고 또 흘러서 가을 오니 만물은 덧없어 이같이 도는구나해 돋고 해 지고 꽃 또한 피고 지니 영원히 불멸할 이 부처님뿐이라 영원히 변치 않음 님의 진리뿐이라 도량의 사루비아 각혈하고 갈잎소리 서걱일 때 쯤 다시 한번 출가 수행승이란 게 자랑스럽다.
두어 번의 강산이 변하고도 또 반이 훨씬 지난 지금, 나도 모르게 위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린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부서지는 오후의 가을 햇살이 서러울 때….
자신의 무게를 못 이겨 휘날리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몇 번이고 되뇌어본다. 그래 세상만물 참 덧 없다, 세상사 야속하리만큼 무상한 것이기도 하지󰡓라고. 그냥 예쁜 중창단복이 입고 싶었을 뿐이었다.
선택되어 찬불가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중학교 시절…. 무엇이 덧없음인지, 더구나 불변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더욱더 몰랐다. 그냥 화음을 넣어가며 친구들과 어울려 열심히 노래하는 것이 즐거울 뿐이었다. 인연은 참 묘한 거라 출가해서도 출세간의 삶으로 세간에서 숨 가쁜 그들과 호흡을 맞출 때…. 참 이상하게도 계절이 한번씩 변할 때쯤이면 난 무의식적으로 눈꺼풀을 깜박이듯 본능적으로 염치없이 하품을 해대듯 그냥 그렇게 위의 노래를 불러댄다.
길을 걸으면서도… 또 운전을 하면서도… 그냥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도… 스치는 바람이 조금만 달라도 그래 이게 무상이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무상이라는 말은 공짜의 절밥을 수월치 않게 먹은 사람이라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약방의 감초처럼 쓰는 불교 용어이기도 하다.
이 가을의 화려함도 봄날의 그 앳된 순수함도 다 무상함의 결과다.

일체一切의 무상無常….
세상의 수많은 가르침들 속에서 무상이라는 진리만큼 절실하고 명확한 가르침이 또 있을까 싶다.
언제부턴가 무상의 현현한 가지각색의 모습들 앞에서 멈출 수 없는 흥분을 일으키게 되었다.
마치 장님이 눈을 떠서 처음 보는 세상에 대한 환희로움같이… .
무상은 책 속에서나 불교 교리 속에서 또는 큰스님의 법어 속에만 숨어 있는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에 영혼의 비타민으로, 삶의 활력소로 살아 있어야 한다. 이름표를 단 존재는 무상하기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항상함이 없기에 지금여기에서 주어진 우리의 삶은 절실하고 구구절절한 애달픔까지 있다.
부처님보다 연장자로 출가해 먼저 열반에 들어 부처님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했던 제자, 사리부타가 발심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무상의 생멸법生滅法이었다.
어느 날 마가다국에서 사리부타는 초전법륜의 주인공이었던 5비구중의 한 사람인 마승 비구의 거룩하고 위엄있는 거동에 매혹되게 된다.
그는 누구의 제자냐 묻게 되고 또 무슨 법을 배우느냐고 묻는다.
그때 마승 비구는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이라 한다. 즉 생멸법이었다.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은 인연 따라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리부타에게 이보다 더 멋있는 진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바로 여기서 훗날 지혜 제일의 사리불 존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훗날 사리불 존자가 교단에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형상을 가진 것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것은 무상법이었다.
진정한 무상은 영원한 생명성의 큰 자아를 깨닫는 것이다.
깨달은 자아는 곧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 자아는 대자유의 열반을 얻게 된다.
무상하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생각해보자. 이 육신을 영원토록 가진다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일 것이다.
무상하기에 자연이 경이로울 수 있는 것이며, 대자유의 큰 자아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상하기에 불제자임이 자랑스럽고 더 이상의 삶이 칙칙하지 않을 수 있다.
무상이 대열반의 존재임을 자각한 우린, 이 가을에 떨어진 낙엽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는 방랑자가 아니라 푸른 하늘에 한 점 떠 있는 구름 같은 영원한 대자유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