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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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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영주 / 해인사 총무국장 2005년 11월 285호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대저 처음 마음의 사람은…… 낭랑한 목소리로 즐겁게 읽어내려가던 초발심자경문의 첫머리이다.
처음 마음이라… 이제 막 출가出家했으니 지금까지 속세에서 가지고있던 찌든 마음을 버린 어린아이적의 고운 마음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물들지 않은 마음이란 뜻이라고 배웠다.
나는 구한 원응久閑 元應 스님을 은사로 16살 때 지리산 벽송사碧松寺에 출가했다. 그 당시에는 보릿고개가 있어서 봄이 되면 먹을거리가 넉넉지 못했던 빈궁한 사찰이었는데 선방禪房이라는 이름 때문에 더더욱 빈궁한 살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깡보리밥 한 그릇에 풀뿌리를 캐어 김치와 된장을 먹어도 그냥 좋았다. 밭에서 일하다가 손이 부르터도 마냥 좋았고, 부처님앞에 있기만 해도 좋았다.
새벽 3시가 되면 딴 스님이 도량석을 할까 싶어 기둥에 걸어놓은 목탁앞에 서서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도 좋았고 선방에 앉아서 꾸뻑꾸뻑 졸다가 장군죽비에 얻어맞아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초발심이 아니었나싶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출가했는지 아니면 절이 좋아 출가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감사히 생각하는 건 부처님법을 만났기에 인과因果를 알았고 나를 돌아볼 줄 아는 안목을 얻은 것이다. 엄하디엄한 은사스님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살았지만 한없이 깊은 자비로움을 갖추시고 무슨 운력을 하든 먼저 호미를 드시고 지게를 지시는 모습에서 몸으로 느끼는 배움을 주셨다.
방 안에 호롱불 하나를 켜도(초도 귀했기에) 심지가 많이 올라가면 그을음이 생기고 기름을 낭비한다고 하셨고, 종이 한 장을 써도 앞뒷면이 가득 차서야 불쏘시개로 쓰셨다.
벽송사에서도 30리 정도 더 깊은 골짜기에 국골이란 곳이 있다. 그곳의 한 칸 토굴에서 지냈던 적이 있는데, 한번은 벽송사에서 국수를 얻어 짊어지고 30리길을 혼자서 토굴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 적이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을 하는데 피할 곳도 없고 해서 그냥 비를 맞으면서 토굴엘 도착하니 아… 요놈의 국수가 부러지고 부러져서 동강동강났으니 이 일을 어쩔꺼나.
거기다가 빗물에 퉁퉁 불었으니 애시당초 먹기는 틀린 것 같은데, 그걸 다시 말려서 시주의 은덕에 감사하며 몇 번을 먹은 기억이 있다. 물론 야단맞는 건 기본이었지만.
이처럼 수행자로서의 근본을 삶속에서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의 절집생활을 질타하거나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왜 지금은 옛것을 본보기로 삼지 아니하고 현재의 편리함에 급속히 젖어드는가 하고 묻고 싶다.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고?

화두話頭에 남녀男女가 있고 노소老少가 있는가?
하루에 단 오분간이라도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돌아보자.
해가 서쪽에서 뜬들 무슨 상관이며 돌장승이 아이 낳은들 무슨 상관인가? 한낱 생사의 장난이 아닌가?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극락세계는 어디에 있는고?
중생이 태어나고 죽는 그곳이니라.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주련의 글이다.
가슴에 담아볼 만한 귀한 글이 아닌가 싶다.

가야산 해인사의 가을은 깊어가고 홍류동 계곡을 휘감아도는 맑은물은 어제도 오늘도 유유히 흐르건만 가고오는 인연들과 머언먼 구름밖을 헤매다가 비로자나 부처님 원력으로 기나긴 겨울밤 꿈으로 지새볼거나.
옛 시조 한 수가 생각이 나서 적어본다.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지거다
아희는 뷔를 들고 쓰로려하는괴야
낙화 -ㄴ들 꽃이 아니랴 쓰지만들 어떠리.

나뷔야 청산 가자 범나뷔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무러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닢에서나 자고 가자.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모로미죠해라.

사랑이 엇더터니 두렷더냐 넙였더냐
기더냐 자르더냐 발을러냐 자힐러냐
지멸이 긴 줄은 모르되 애 그츨만하더라.

세상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괴야
남의 흉 보거라말고 제 허물 고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