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기가 맑고 청량한 것은 중생의 온갖 번뇌가 쉬는 때이기 때문인가. 달은 저 하늘 높은 곳에 올랐고 月到天心處
바람이 수면에 잔잔할 때 風來水面時
이 청량한 맛, 一般淸意味
아는 이가 적은 것을 헤아려 알았네. 料得少人知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위태롭고, 도道를 향한 마음은 그지없이 미약한 것이다보니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그러하기가(恒心)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꾀를 내서도 안 되고, 억지로 함이 있어도 안 되는 길이라 그 뜻을 지키기는 더욱 쉽지 않다.
백거이(白居易, 樂天:772~846)는 노래하기를 능히 수레를 부술 만큼 험한 태행산길도 그대의 마음보다 너그럽고, 배를 뒤엎을 만큼 거센 무산협의 저 강물도 그대의 마음에 비한다면 편안하네(太行之路能車 若比君心是坦道 巫峽之水能覆舟 若比君心是安流) 하였으니 낙천이 느낀 것이 비단 도심道心은 아닐지라도 비유가 참으로 절묘하다.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과 숨이 한번 들고 나는 때에도 중생의 마음은 이리저리 춤을 추기를 맑은 가을 부서지는 햇살보다 더욱 바쁘다.
백거이는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였다. 불가에서는 도림(道林:741~824) 선사와의 문답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항주杭州자사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항주의 진망산에 주석하던 도림 선사는 항상 산중의 나뭇가지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어서 마치 새의 둥지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조과 선사 또는 작소 선사라고들 하였으니 때마침 낙천이 그곳을 지나다가 선사를 보고 말하기를, 당신은 그런 곳에 앉아서 새처럼 생활하고 있는데 위험하니까 그만두는 것이 어떻소. 라고 하였다. 선사는 곧 대답하기를 상관하지 마시오. 위험한 것은 오히려 당신이구려.라고 하였다.
낙천은 곧 나는 위험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선사께서는 티끌 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이 어찌 위험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답하였다.
이에 백천은 제가 평생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을 한 구절 듣고 싶습니다. 하고 불손한 태도를 바꿔 공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했다.
나쁜 짓을 하지 말고 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衆善奉行
하고 답하여 게를 송하니 대답에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락천은 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하고 신통치 않다는 듯이 반문하였다. 이에 선사께서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네.
이 말을 들은 백락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불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백낙천白樂天보다는 저 남북송南北宋의 황정견黃庭堅이나 동파東坡, 도연명을 즐겨 가까이했다. 그럼에도 백낙천의 행음도行吟圖가 전해지는 것은 그와 도림 선사와의 문답이 지금까지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그림의 선미禪味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이 그림의 백거이의 모습을 통해 도림의 한마디로 스승을 삼아 일생을 두고 청격淸格을 유지한 그의 삶과 시詩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 있을 뿐이다.
악행을 일삼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봉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앞서 조우한 소강절 선생의 일상의 가르침이 귀에 즐겁다.
사람이 남을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곧 성을 내지 말고, 사람이 남을 칭찬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곧 기뻐하지 말며, 사람이 남의 나쁜 말 하는 것을 들을지라도 곧 이에 응하지 말되 사람이 남의 착한 말을 듣거든 이에 응답하고 기뻐하라. 착한 사람 보기를 즐거워하고, 착한 일 듣기를 즐거워하며, 착한 말 하기를 즐거워하고, 착한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남의 잘못을 듣거든 가시를 진 것같이 싫어하고, 남의 착한 것을 듣거든 난초를 가진 것같이 기뻐하라.
이미 이 해도 깊을 대로 깊어졌지만 태양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지치지도 않고 명랑하게 재촉한다. 달도 깊어 때는 그믐으로 북쪽하늘 칠성의 됫박만 하릴없이 매달려 돌고, 달의 혼백魂魄은 주변을 맴도누나. 별빛 아래 마른 잡초도 제 몸을 다하여 복과 덕을 갈고 닦는데, 밖으로 홀로 나도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붉은 둥지에 자리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