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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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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영덕 2005년 11월 285호
꽃지 바닷가에서 일몰을 보았다. 망망한 대해에 지는 노을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은, 땅 위에 길이 있고 길 위에는 떠나 보내거나 마중하는 정거장이 있듯 바다에도 이별과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한 생각이 일어나고 스러지고 계절이 바뀌고 한해가 가는 그리고 사람이 나고 죽는 일이 출렁이는 파도 한 물결 속에 있음을 절감한다. 존재의 고통. 시시이이時時移移 변화하는 유형의 모습. 펄럭이는 바닷바람 앞에서 옷자락을 날리며 쓸쓸하고 절실한 삶의 한 지점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올 때는 선후가 있어도 갈 때는 차례가 없다네. 종단의 어른과 선배, 동기 후배를 먼저 보내며 충분한 상실감의 허물을 느끼기도 전에 떠난 자리는 흔적도 없이 메워지고 돌아와 소식 전하는 사람 없으매 이승과 저승의 길이 먼 줄 안다. 수렴왕생隨念往生이라. 서쪽으로 십만 팔천리 길을 생각을 따라 일념에 갈 수 있다면 한 생각을 돌이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련만 가고 나면 누구든 엽서 한 장 없다. 극락왕생의 낙이 좋기는 좋은가 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 철저한 일회의 삶 속에 누구든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죽음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나 필연적으로 만나야하는 통과의례이지만 아직 내게 죽음은 낯선 남의 일이다. 죽음 앞에 홀로 서게 될 때 후회와 아쉬움에 절망할까.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무한한 우주의 생명질서 속으로 홀로 떠나는 여정에 외롭다고 투덜거릴까.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허덕이지는 않을까. 무수한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일념을 잡고 준비되어진 그곳을 향하여 향기롭게 미소지으며 이 낡은 육신을 벗어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기쁘게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준비없는 죽음 앞에 절규하며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이는 사람들을 위해 평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을 준비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얼마 전 죽음을 앞둔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보살행으로 자신의 수행을 삼고 있는 정토마을의 능행 스님이 다녀갔다. 아픈 사람 옆에서 한 시간도 바라보기 어려운데 환자의 남은 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며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도록 신체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가족의 고통과 슬픔마저 보살피는 그분의 보살행에 가슴이 저렸다. 인구 4명 중 한 명이 암 투병자라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요인들, 인스턴트 음식물과 문명의 이기와 전자파, 화공재료로 이루어지는 섬유와 주거공간 수질오염 대기오염, 각종 스트레스… 대 사회적으로 변화시키며 무엇보다 삶에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잘사는 것에 대한 의식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늘 자연 속에 동화되며 소욕지족하는 자세가 평화로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근원인 것! 늘 구체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며 의미있는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야 하리. 삶을 사랑하듯 죽음도 사랑하며 홀로 떠날 그날을 위하여 먼저 가는 자들을 죽음으로 잘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에 대하여 배워보아야겠다. 이 세상 중생에게 병이 있는 한 병에서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저는 약과 의사와 그들의 간병자로 남기를 바랍니다. 절망하고 가난한 중생에게 다함 없는 재물이 되고 여러 가지 필요한 도구가 되어 그들 곁에 항상 머물게 하소서. 아미타 부처님을 향한 절대 믿음이 희망의 등대가 되도록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원을 세워 보리행을 닦아나가는 수행에 기꺼이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