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고속철도와 게룡산... 다시 산이 앓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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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10월 284호
다시 말없는 산이 문제의 쟁점이 되고 있다. 10여년 전 홍역처럼 가야산을 앓게 했던 골프장 건설이 다시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직은 건설업자의 움직임이 바짝 엎드린 모양이지만 언제 불도저처럼 으르렁거릴지 모른다.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도 이후 우리 불교계는 산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리산에 댐을 짓겠다는 정부의 무모한 계획을 꺾어냈다. 북한산 관통터널은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개발사업 시 국립공원과 사찰의 수행환경을 고려하겠다는 국무총리의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그 이전도 사찰은 산 지킴이였다. 사찰마다 산감이라는 소임을 두어 나무 한 그루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했다. 사찰마다 우뚝한 느티나무며 소나무, 전나무들을 스님들이 지켰기에 지금 저리 푸르른 것이다.
우리 불교와 산은 떼어놓고 부를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냥 해인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가야산 해인사라고 불러야 본모습으로 다가온다. 갑사, 동학사, 신원사도 그렇다. 계룡산을 붙여서 불러야 한다.
지금 계룡산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 계획 때문인데, 경부와 호남선의 분기역을 충북의 오송이라는 작은 역으로 정하기로 한 것이 계룡산 훼손 위기의 원인이다. 오송을 분기역으로 하면 호남고속철도의 노선은 오송-행정신도시-익산-광주-목포로 이어진다. 문제는 오송을 분기역으로 최종 결정할 경우 계룡산의 한가운데를 터널로 뚫고 지나가든지 아니면 북서쪽을 깎아내야 한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왜 오송역을 분기역으로 하려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천안-익산을 잇는 노선이 가장 타당하다. 고속철도는 빨라야 한다. 빨리 가기 위해 수조 원(경부고속철도의 경우 19조원인데, 이 액수는 우리 나라 1년 예산의 10%에 가깝다.)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사업이 고속철도 건설 사업이다. 오송을 분기역으로 할 경우 천안-익산보다 노선 길이는 19km나 늘어난다. 고속철도 1km 건설비가 382억원이라고 하니, 7천억원이 넘는 돈을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다. 시간도 4분이 더 걸리며, 요금도 왕복 6천원 가까이 더 부담해야 한다.(정부당국에게 계룡산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려해달라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이니 건설비와 운행 시간, 운임만 강조했다.)
이용자 요금 부담이 커진다고 하자 건설교통부장관은 늘어나는 길이만큼의 요금은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런 발상은 실망스러울 뿐이다. 이용자 대신에 국민들 모두에게 부담시키겠다는 얘기이다. 장관이라면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의 생각도 장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23일 지방언론사 편집국장단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호남고속철도는 정치적으로 결단을 해야 할 사안”이라면서 “경제적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광주일보, 2005. 8. 23) 호남고속철도만 놓고 본다면, 이 정부는 오로지 정치적 손익만 따지는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국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권력도 초라하고, 국민도 초라하게 되는 것이므로 마땅히 재고해야 한다.
계룡산 훼손 위기와 관련해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대전·충남 불교계와 충북불교계가 분기역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언론은 ‘불-불 갈등’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먼저, 불교계가 한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쑥스럽다. 그런데 갈등을 일으킬 만한 내용인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충북불교계가 발표한 문건을 보니, “환경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에는 동의하지만 호남고속철 오송 분기역 건설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호남고속철 오송 분기 노선은 계룡산을 직접 관통하지 않고 국립공원 경계구역으로부터 600여m 떨어져 통과한다”고 되어 있다.
이 주장을 읽으며, 두 가지 점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충북지역에 있는 오송으로 분기역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데, 오송이 분기역으로 타당한지를 밝혔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 왜 오송 분기역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기역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바라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앞서 적었듯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은 천안이 타당하다. 빨라야 하는 고속철도의 속성과 건설비, 이용자 편의면에서 그렇다. 그리고 호남고속철도는 어느 특정한 지역의 사업이 아니다. 우리 국토 전체와 연계된 사업이다. 지역의 시각으로서만 볼 것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 불교가 더 넓은 시각을 갖지 못할 때,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과 계층 등의 갈등을 완화하고 조정하는 더 큰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불교적으로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손실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국립공원의 경계구역은 행정상의 경계선일 뿐이다. 경계에서 수 km를 떨어져 지나간다해도 계룡산의 생태계와 경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면 계룡산을 해치는 것이다. 산은 국립공원과 그 밖이 단절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밖이라고 해서 쉽게 개발을 해도 된다는 것은 국립공원이라는 절대보존구역을 위협하는 논리이다. 더구나 계룡산의 북서쪽은 환경부에 의해 개발을 금지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다.
언론 또한 마치 지역의 불교계가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본질과 멀어도 한참 먼 사안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언론의 길이 아니다. 호남고속철도 노선과 관련된 본질은 오송 분기역의 타당성과 계룡산 훼손 여부이다. 이에 대해 언론은 관련자의 주장을 싣고 어느 의견이 더 타당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또 언론의 여러 기능 가운데 갈등 해소라는 중요한 기능이 있는데, 몇몇 언론의 보도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 불교에서 산은 그저 산이 아니다. 산에 사찰이 자리잡고 있으면, 그 산 곳곳에는 크고 작은 암자가 원래부터 산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놓여 있다. 그래서 산은 곧 수행도량인데, 정부와 개발업자들은 수행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하지 않고 파헤치고 있다. 이러한 때 산을 온전히 지키려는 우리 불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크다. 산을 지키는 것은 또한 다른 누가 할 수 없는 우리 불교의 일이다. 계룡산 지키기에 지역의 스님들이 나섰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그러나 지역 스님들만이 지키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계룡산이 어찌 대전·충남지역만의 산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