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남부에는 유례없는 거대한 태풍이 휩쓸어 뉴올리언즈라는 도시를 삼켜버렸다. 이 도시는 예전부터 낭만과 미각의 도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라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이런 재난을 겪으면서 미국 정부의 늦장 대처도 비난을 받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선진국임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이재민들의 약탈과 혼란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하고도 남았다.
한편 동남부의 태풍에도 불구하고 이곳 LA는 비교적 넉넉하고 한가로운 추석 연휴를 지냈다. 올해는 추석이 일요일인지라 가족 단위로 절을 찾아 차례를 함께 지내는 분들이 많았다. 여기서도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먹고 덤으로 밤에는 둥그런 보름달도 볼 수 있었다.
연휴를 이용해 LA 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투탕카멘(Tutankhamen)과 파라오의 황금기’의 전시장을 찾았다. 사실 오늘이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세 번째로 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6월 중순부터 시작한 전시는 우선 박물관 회원부터 예약을 받고 그 나머지를 일반에게 주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지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도 황금 가면의 미소년으로 널리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소년왕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중 50여 점의 유물과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나온 7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었다. 특히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카터가 이른바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한 곳으로 이 속에는 110킬로그램의 순금으로 제작된 관과 화려한 황금 마스크와 장식품, 가구 등 수만 점의 보물들이 있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보물창고였다. 다행히 이 보물 전부는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고 모두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2층에 수장되어 있으며 미국 전시는 두 번째이다. 첫 번째 전시에서도 800만 정도의 사람들이 관람했다고 한다.
소년왕 투탕카멘(Tutankhamen)은 기원전 1336년 다신교를 부정하고 아텐 신만을 믿는 아멘호테 4세와 키야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죽은 후 8살 때 왕위에 올랐다가 17살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사망 이유가 다리 부위의 골절에 따른 세균 감염으로 밝혀졌으며 그리고 그의 미이라를 1700여 차례에 걸쳐 단층 촬영을 하여 얼굴을 복원했다. 복원된 얼굴을 보면 큰 눈과 오뚝한 코 등을 한 건장한 미소년의 모습으로 그의 미이라에 씌여진 황금 가면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혼잡을 예상하여 아침 일찍 박물관을 찾으니 여름만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 군데의 검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어두운 공간이 나왔다. 그러다가 정면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전시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발굴 현장을 보여주더니 스크린이 꺼지면서 깜깜한 공간 한가운데 황금 소년상이 갑자기 나타나서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그 상 뒤로 방이 바뀌면서 나일강의 사진이 벽 전체에 걸려 있어 천천히 이집트 속으로 이끌려 가는 것 같았다. 먼저 투탕카멘 이전의 파라오들의 무덤에서 나온 조각과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동물들을 모티브로 한 신들의 상과 그들이 생전에 쓰던 생활용구가 많았다. 이 전시장이 끝나고 미로처럼 작은 공간을 몇 개 지나자 투탕카멘의 전시실이 나왔다. 전시실은 무덤의 모양을 최대한 살려 벽 위쪽에 무덤 벽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비쳐놓았고 조명도 아주 어두웠다. 덕분에 미이라를 넣었던 황금 관이나 장식구들이 더욱 찬란히 빛났다. 황금의 관을 열었을 때 왕비가 놓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백합과 연꽃 등의 꽃다발도 거의 원형 그대로 있었다고 하니 3천 년이란 시간만 경이로울 뿐이다.
머리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 장식의 왕관을 쓰고 목에는 영원한 삶을 상징하는 딱정벌레가 달린 보석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황금 마스크는 생각보다 아주 작았지만 섬세하고 너무나 예쁘게 만들어져 있었다. 주목할 점은 장신구나 마스크 등에 코발트 색과 파란 색을 많이 쓰고 있는데 이 색은 예전부터 삶을 상징하는 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왕은 두 손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놀이기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측은함마저 들었다. 그리고 머리 장식 부분이나 스틱의 윗부분, 그리고 잔의 받침 등에 연꽃이 쓰이고 있었는데 연꽃은 파피루스와 함께 이집트에서 순수하고 고귀한 꽃의 상징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뭔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갔는데 막상 보니 작고 귀엽고 예쁜 느낌의 전시품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에는 눈이 부셨다. 머리 뒤통수가 유난히 튀어나온 것 말고는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얼굴에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르지 않은 가구와 생활용품들을 보며 과연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어리벙벙한 채로 출구로 나오니 몇 백명의 초등학생들이 줄을 지어 있는 모습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오늘도 몇 시간을 기다렸을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