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병 아저씨, 아니 오빠! 애인이 맘 변했다구 그랬죠? 『딸처럼 자란 남자 견우. 그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는 안 하는 먹구대학생이다. 그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술이 만취되어 인사불성인 여자를 만난다.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들쳐 업고 여관에 바래다주면서, 엽기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그녀는 매사에 여자답지 않게 과감하며, 견우로 하여금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견우와 그녀는 점차 가까워지지만, 그럴수록 죽은 애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녀는 2년간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마침내 2년 후 약속한 날. 견우는 약속장소인 소나무 아래로 찾아가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도 1년이 지나서야 그녀는 약속장소로 찾아가지만, 견우를 만나지는 못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3년 전의 그 소나무는 벼락 맞아 죽었으며, 그와 유사한 나무를 견우가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 나무가 죽은 걸 알면 가슴 아플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죽은 나무와 산 나무.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그녀는 1년 반 만에 영국에서 돌아와, 죽은 남자의 어머니를 만나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게 된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견우였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을까? 견우는 말한다.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랍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넓디넓은 세상 그리고 하고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서로 만난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연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필연일 뿐!
너무 애절한 사랑은 전생에 살생의 연이 만난 것이다. 살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만나 절절한 사랑을 나누다가, 갑자기 죽는다거나 헤어짐으로써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다. 이보다 더 통쾌한 원수 갚음이 어디 있을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해서 너무 가슴 아파할 일이 아니다. 이 영화의 대사에서처럼, 정말 사랑한다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시간은 언제일까? 지나간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일까?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장밋빛 꿈일까? 물론 이 모두가 다 소중하기는 하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없다면 과거나 미래도 없다. ‘현재’조차도 머무르지 않는다. 다만 ‘바로 지금’만이 있을 뿐!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공간은 어디일까? 지나간 여름 찾았던 바닷가일까? 내년에 가고자 하는 환상의 섬일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여기’가 없다면 ‘거기’나 ‘저기’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여기’만이 있을 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충실히 대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부모나 친지, 혹은 아이나 은인일까? 물론 이 모두가 소중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내가 바로 지금 여기서 대면하고 있는 ‘이 사람’이야말로 충실히 대해야 할 사람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는 ‘이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가족, 직장에서는 선후배나 동료직원, 모임에서는 친구들이 그렇다.
‘바로 지금’이 과거나 미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나 미래가 ‘바로 지금’ 때문에 존재한다.
‘여기’가 ‘거기’나 ‘저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나 ‘저기’가 ‘여기’ 때문에 존재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