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다니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법당에서 나와 마시는 ‘물맛’이다. 요리를 한다고, 맛은 좀 안다고 난 체를 했어도 ‘물맛’조차 제대로 모르던 나였다. 그런데 법당에서 삼 배, 이십일 배, 백팔 배를 하고 나와 졸졸 흐르는 절집 물을 마시면서, 절집마다 물맛이 다 다름을 깨달으면서 ‘물맛’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꿀꺽 급하게 넘겨버리면 그 맛이 다 그 맛 같아도, 입안에 잠시 머금었다가 삼켜보면 한 번도 같은 맛이 없으니 신기하다. 유난히 매끄러운 물이 있는가 하면 쌉쌀한 뒷맛이 남는 물이 있고, 그냥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묵직하게 혀에 남아 표주박으로 한 번 이상 떠먹지 못하는 물도 있다. 야채 초밥
식초를 이용할 수 있는 요리를 하나 얘기할까 하고 보니 역시 만만한 것이 밥 요리다. 밥에다 단 초물이라 부르는 식초와 설탕과 소금을 녹인 물을 섞어 고슬고슬 비비는 게 떠오른다. 이 밥이 ‘초밥’의 기본이 되는데, 밥이 뜨거울 때 비벼서 조금 식힌 다음 쓰면 된다. 출장 요리사이기도 한 내가 채식주의자 의뢰인을 만났을 때 곧잘 써먹는 메뉴는 바로 ‘야채 초밥’. 방금 설명한 단 초물에 비빈 밥에 알맞게 절인 야채를 얹는 것이다. 이에 적합한 야채는 잘 무르지 않아야 하고 게다가 씹는 맛까지 있다면 더 좋다. 예를 들어 도톰하게 썬 표고버섯이나 새송이 버섯, 단 호박이나 어린 당근, 오이나 브로콜리 혹은 무나 가지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데, 만드는 법이 아주 쉽다. 도톰하게 썬 야채를 설탕 섞은 식초에 절여 숨을 좀 죽이고, 건져서 물기를 뺀 다음 쓰면 된다. 단, 야채 초밥을 만들 때 밥을 비비는 단계에서 단 초물 외에 몇 가지가 더 들어가는데 맛의 밸런스를 위해서다. 밥과 야채에 모두 식초가 쓰이게 되므로 전반적으로 너무 시어질 수 있어서 참기름, 깨 그리고 김 가루를 넣게 된다. 초물에 이미 설탕과 소금간이 있었고 여기에 고소한 참기름과 깨맛, 담백한 김 향이 잘 섞인 밥을 한 입 크기로 꼭꼭 빚어내고(여기까지는 주먹밥을 생각하면 된다), 그 위에 초절임해둔 야채를 하나씩 올리면 완성된다. 쉽게 말하면 주먹밥을 먹고 상큼한 단무지 혹은 백김치를 한 조각 먹는 격인데,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제법 고급스러운 요리같이 보여서 입맛 없는 가족들이나 갑자기 찾은 손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 재료를 보면 알겠지만 다이어트에 좋은 메뉴이기도.
주말에 절을 찾으면 유난히 공양 시간에 사람이 많아 보인다. 공양을 들고 나오는 이들을 가만히 보면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꽤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절밥’이 맛있어서 들른다고 고백한다.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한 절 밖의 밥은 왜 맛이 덜할까? 중금속이 섞인 수돗물을 마시고 욕심을 잔뜩 얹은 식단을 급하게 먹느라 일상 중에 먹는 밥이 심신에 독이 되는 거다. 내 몸이 절에 있든 절 밖에 있든 간에 좋은 물로 천천히 목을 축이고, 식초 몇 방울로 건강을 지키며 마음을 비워 조석으로 절을 하다보면 집 밥도 절밥처럼 좋은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