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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심는 도자道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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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영덕 2005년 05월 279호
한 조각 외로운 달빛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 비출 때 바위 아래 띠집에는 등어리 굽은 도인 있었네. 반짝이는 백발에 주름진 얼굴, 꽃도 피면 져야 하고 나면 죽어야 하는 여실한 실상 앞에서 무엇을 더 기다리랴. 내일은 서쪽 골짜기 쌍봉에 들어 한평생 소나무 심던 일 마쳐야 하리. ‘이내 몸 늙었으나 도 담을 그릇 되오리까’, ‘이왕이면 몸 바꾸어 새 사람으로 오시게나!’ 그 길로 돌아서 산길 내려오다가 빨래하는 어린 처자 의탁하여 어머니를 삼았는데, 어린 아들 데려다 도신 선사 손에 쥐어주고 돌아서는 어미는 아들보다 편안하고 의연하였다지. 황매불국黃梅佛國을 이룬 홍인의 전생 이야기인데 예부터 도자道者들도 나무 심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
그로부터 삼백년 가까이 지났을까, 우보호시牛步虎視. 황소같이 느리게 걷고 호랑이처럼 사무치게 꿰뚫어보던 임제 스님도 납자를 제접하는 틈틈이 주변 산에 소나무 심는 일에 열중하였는데 십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고 백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인재를 심는다고 도인의 묘용妙用으로 한 그루 나무를 한평생 서 있을 인연의 터에 제대로 심어주었다고.
나무를 자산으로 현실 속에서 자리이타를 일구어낸 사람으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왕가리 마타이를 지나칠 순 없어. 아프리카 전역에 삼천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 숲을 지킴으로 사막화를 막고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운동을 확산하여 환경과 평화의 연관 관계를 몸소 보여준 그녀. 지난한 정치적 난관을 극복하고 절반의 희망 절반의 고통마저도 모든 순간을 꽃봉오리로 환원시킨 위대함. 더 열심히 일하리 그 순간들을 사랑하며 모든 순간들이 다 꽃봉오리인 것… 이제는 잊어버린 시구가 지나간다. ‘내가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여 그 뼛가루를 나무 둥치에 뿌려주어. 죽어서 나무의 거름이 되고 싶어.’ 한 그루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까지 기다림의 세월을 체득한 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 씨. 죽어서 개구리가 되고 싶다던, 개구리 울음 소리가 커지는 밤이 되면 오래도록 연못가에 머물러 그 소리를 들었다는 그가 오랜 지기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살아서 서로를 쳐다보지만 아무런 느낌 없는, 냄새로 소리로 눈빛으로 먼저 오는 사람에 대한 느낌을 지워버린 수좌를 노파는 끝내 쫓아 내고 암자를 불태워버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무를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나무를 지켜줄 뿐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려던, 남에게 이쁘게 보이려 심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입장에 서서 스스로 자라도록 도울 뿐인 그. 나무를 심는 것도 사람을 키우는 것도 오랜 정성과 기다림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