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신심은 생명이니 시처時處에 정진을 게을리 말지어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나의 행자시절 - 박원자 2005년 08월 282호
원조 / 제주 약천사 주지


“멀리서 잊지 않고 보내주는 海印 及 八四年의 달력 等을 모두 잘 받았고, 모든 어려움과 是非에 동요됨이 없이 淸淨大道場에서 工夫하고 있는 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여기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五萬원을 보내니 施恩이 무거움과 소중함을 알아서 남들과 같이 풍족하게 써도 된다는 生覺을 않도록 하여라. 그리고 간간이 老스님께 찾아가서 侍奉할 것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성의를 표하고 혹시 어려움이 있어서 나에게 급히 연락이 되지 못할 경우에도 언제나 老스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可能한 自力으로 智德을 키워 나아갈 각오와 누구에게나 신세와 은혜를 입기보다는 時處에 報恩을 하겠다는 意志가 分明한 사람이 되도록 勞力하여라.
점점 추워가는데 몸조심 하여라.
이만 총총…”

앞의 편지는 1984년 11월 초, 내가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은사이신 혜인慧印 스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행자시절을 추억하는데, 왜 나는 은사의 편지부터 공개하는 것일까. 스님이 내게 보내주셨던 따스한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내가 지금 여기 약천사에 이렇게 복 많은 수행자로 서 있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해인사 강원에 있으면서 은사스님을 정하는 좀 복잡한 문제로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스님은 두 말 않고 나의 나이와 고향을 물으시더니, 그 자리에서 ‘원조圓照’라는 법명을 주셨다. 원각이 법계를 비춘다(圓覺照法界), 곧 이 세상을 부처님 자비광명으로 비추라‘ 는 당부를 실어 한없이 부족한 나를 그 자리에서 상좌로 거둬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셨다.
“강원을 마치고 천일기도 한 번 하고, 선방 3년 다니면서 10년을 채우면 무슨 일을 해도 성취할 수 있다.”
그 말씀이 내게는 화두가 되었고 중노릇하는 데 기준과 원칙이 되었다. 해서 나는 강원을 마치고 선방을 거쳐 보은 법주사에서 천일기도를 마쳤다. 그것은 미욱한 나를 거둬주신 스승의 당부에 대한 보답이었고 원만한 출가의 길을 발원한 나의 의지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 10년은 비로소 출가의 기틀을 세우고 다지는 행자시절과 다름 아니었다.
그 10년 가운데, 법주사에서의 천일기도는 출가의 길에 선 내게 많은 힘을 실어주었다. 선방에 있으면서 화두에 의심이 생기지 않아 고민 끝에 법주사 주지스님이셨던 정일 스님을 찾아갔었다. ‘중노릇 몇 년째인데, 화두에 의심이 들지 않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여쭙는 내게 스님은, ‘수좌가 공부하다가 안 되면 기도를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마침 법주사 명부전을 신축중일 때여서 명부전 점안식이 끝나고 나서 천일기도에 돌입했다. ‘1백일 기도를 해보면서 정비를 하고 천일기도를 해야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막바로 들어간 천일기도는 일주문 밖을 한 번도 나간 일 없이 무사히 회향되었다. 마장이라야 어느 겨울에 감기가 심하게 들어서 목이 부었던 일이었으나, 그것도 의사가 왕진해서 치료해주는 일로 끝났으니, 실로 원만한 회향이었다.
나는 신도분들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고 권한다. 아마도 나 자신이 기도에서 얻은 체험 때문일 것이다. 법주사에서의 천일기도 후 출가자로서 살아가는 데 물 흐르듯 막힘이 없었다. 정성스럽고 올바른 기도는 우리 생명에 깃든 부처님의 무한한 공덕을 드러나게 한다. 가끔씩 신도분들이 ‘어떻게 해야 기도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기도를 원만히 회향하려면 가능한 한 같은 장소에서 시간과 분량을 정확히 지키라고 말한다. 말뚝신심이 난다고 해서 분량을 늘리거나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정해놓은 분량으로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기도의 성취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관건이다.

출가의 길에 있어 스승과 도반이 절대적인 존재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인 만큼 제자는 스승을 닮을 수밖에 없다. 나의 은사이신 혜인 스님은 해인사 지족암 일타 노스님의 맏상좌로 노스님과 언행이 많이 닮으셨다. 신심이 투철하고 당신이 세운 원칙은 절대 무너뜨리지 않고 실천하는 분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스님께서 ‘고향인 제주도에 해인사와 같은 대가람을 세워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대지 구입을 하는 데만 7년이 걸렸고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는 15년의 세월이 걸렸다. 보통사람 같으면 아마도 그 오랜 세월을 지쳐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투철한 원력에 의한 초인적인 힘으로 오늘날 약천사는 단일 법당으로는 동양 최대의 규모로 뒤로는 한라산의 영봉이 보이고 앞으로는 한없이 넓은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도량이 되었다. 3만 7천평의 대지에 세워진 대적광전은 지상 29미터로 참배객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신심을 고취시키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사찰이 된 것이다.
은사스님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한 수행자의 지치지 않는 초인적인 원력이 얼마나 많은 중생을 제도하며 큰 힘을 발휘하는가 하고 말이다.
이십대 후반에 해인사 장경각에서 1백만배를 회향하며 구도의 정열을 불사르며 ‘불사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약천사 불사를 마친 스님은 지금 다시 충북 단양에 64만평의 부지를 확보해서 백만불전 광덕사를 건립하고 있다. 스님의 불사를 통한 대중교화에의 투철한 원력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은사스님을 처음 뵙던 날 당부하셨던 말씀을 겨우 지킨 나는 지금 은사스님이 원력으로 세우신 약천사의 주지소임을 맡고 있다. 큰 나무가 드리우는 덕화가 크듯 나는 은사스님의 덕화로 내가 가진 역경계를 축복으로 승화시켜 복 많은 수행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몇 해 전, 스님께서는 나에게 당호를 내리시며 게송을 주셨다. 도월이라는 당호를 내리신 스님의 심중이 사무쳐 처소에 걸어두고 마음에 새기고 있다.

“爲 道月堂
圓覺照法界 藥泉道月明
常念本分事 永作成佛友

恒常 本分을 生覺하고 自身과 佛보살님께 부끄러움없이 살면서 우린 서로 믿고 의지하여 成佛道伴이 되자 癸未 春 道樂山 閒主 情”

“원각이 법계를 비추니 약천사에 진리의 달이 밝았구나. 항상 본분사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성불의 도반이 되자”시던 은사의 따뜻한 당부를 잊지 않고 살아가리라. 또한 지극히 불교적인 삶을 살고 계행을 지키면서 지금 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짬지게 활용하리라.
“신심은 생명이니 시처時處에 정진을 게을리 말지어다”, 언젠가 편지글에 담아보내신 은사스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말이다. 그리한다면 선업이 되어 다음 생에도 수행자가 되는 복을 다시 누리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