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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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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5년 08월 282호
모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중인 외화 가운데 ‘런치의 여왕’이라는 재미난 제목이 있다. 아버지가 일군 소박한 레스토랑을 젊은 형제들이 이어가며 요리와 삶을 배우는, 가족 드라마요 러브 스토리가 가미된 로맨틱 코메디다. 큰형이 요리사가 되기를 거부하고는 타지로 떠도는 가운데 어느 날, 큰형의 애인이라는 여자가 레스토랑에 나타난다. 늙은 아버지와 둘째 아들 그리고 셋째와 막내까지 흠칫 놀라지만, 남자들끼리 살던 집에 일단은 큰형의 애인을 머물게 해준다. 그러나 털털한 그녀의 성격 탓으로 레스토랑 내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이내 모든 가족들 앞에서 세 번의 실수를 더 하면 이 집을 나가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번의 실수를 저지르고, 투 아웃 상황에서 여자는 또 실수를 하게 되는데, ‘감자 세 박스’라는 주문서를 잘못 읽는 바람에 감자 삼십 박스를 사버린 것.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한 건 바로 수석 주방장인 둘째 아들이었다. 감자를 양파와 함께 버터에 볶다가 물과 육수를 붓고 푹 끓인 다음 믹서 기에 넣고 곱게 갈아서 만드는 수프를 끓인 것. 감자를 곱게 간 다음 우유를 부어가며 잘 저어서 농도를 조절하고 소금 간을 하면 완성되는데, 요것을 차게 식혀서 식사 전에 몇 술 뜨면 아주 맛있다는 거다. 수프의 이름은 ‘비수아즈’라고, 프랑스 가정식이다. 감자, 양파, 육수(야채만 맑게 끓인 물도 좋다) 그리고 우유와 소금만 있으면 되니까 재료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결론은, 이렇게 간단히 끓인 감자 수프가 매진되고, 더 나아가 본 메뉴에까지 올리도록 만장일치 봄으로서 여 주인공의 실수가 잘 넘겨진다.

드라마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산처럼 쌓여 있던 감자 삼십 상자가 마술처럼 수프로, 맛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소금’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지나칠 수 없었다. 감자 수프도, 콩국도 소금이 없으면 ‘맛’이 되지 못함을 크게 느낀 순간이었다. ‘소금’을 《동의보감》에서 찾아보면 본시 맛이 짜며 독이 없다 말한다. 《본초강목》에서는 차고, 짜고 역시 독이 없다고 하며 그래서 위나 담의 열을 내려주고 지혈과 해독을 도우며 부패를 방지하여 청결을 돕고 소화를 책임지며 식욕을 촉진한다고 나와 있다. 일찍이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왕실이 소금에 대한 권한을 꽉 쥐고 있었고 중국에서도 일찍이 소금에 과세를 하는 등, 소금은 ‘식재료’ 이상의 대접을 받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에 소금물을 이용하여 부패를 막았고, 기독교에서는 ‘빛과 소금’이라 하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들을 소금에 비유해 왔다. 물이나 공기처럼, 소금도 우리 사는 데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소금물로 한번 씻긴다는데 이것은 악귀를 쫓아낸다는 불교적인 의식이기도 하다고 전해진다. 소금의 해열, 해독, 청결 작용에 착안하여 아침마다 자연 소금을 조금 녹인 생수를 마신다는 이들도 있다. 중국의 유명 여배우는 이 방법으로 아침마다 장 청소를 대신한다고 하기도 했고. 소금물도 좋지만,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소금을 섭취하는 것이 어떨까.

개인적으로 짠 맛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지, 아침부터 소금물을 마신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아서다. 앞서 언급한 크림 수프나 콩국 같은 국물 종류에 딱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훌훌 떠먹는 방법이 첫째다. 다음은 숙주나 취나물, 부추 등을 기름 약간에 슬쩍 볶은 다음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반찬 삼아 먹는 것, 즉 야채를 데치거나 볶아서 소금 간 하면 된다는 얘기다. 요즘같이 과일이 잘 무를 때에는 남은 과일을 아예 모아서 설탕에 졸여서 잼처럼 만드는 것이 낫다. 바나나면 바나나, 포도면 포도, 그저 꼬투리 남는 과일을 넣고 뭉근히 설탕에 졸여주면 된다. 여기에도 소금을 조금 넣으면 좋은데, 소금의 짠 맛이 과일과 설탕을 더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과일 표면에 소금이 묻으면 수분이 빠져나오게 되면서 더 풍부한 과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잼은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 먹는다. 수박에 소금을 뿌려가며 먹던 일본인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수박 과육이 더 단단해져서(수분이 빠져 나와서) 수박이 더 ‘아삭’하다고 했던 기억도 난다. 감자나 고구마, 호박을 툭툭 썰어서 기름에 튀긴 다음 소금만 대충 뿌려 먹어도 맛있고, 도톰히 부친 계란말이를 밥이랑 먹을 때도 맛난 돌소금을 잘 빻아서 계란 위에 솔솔 뿌리면 비릿한 계란 내와 밍밍한 뒷맛이 없어진다. 이렇듯 소금만 잘 써도 ‘맛’이 된다. 지혜로운 선조들이 소금을 이용해서 젓갈을 담가 먹어왔듯이 말이다. 특히 요즘처럼 부실한 식재료와 부족한 솜씨를 조미료로 슬쩍 가려버리는 시대에는 소금만 제대로 써서 맛을 낸 음식들이 더 그립다. 요리도 사람 같아서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만큼만 간을 해야 오래 먹어도 안 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