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말콤이라는 남자가 살았어. 아이들 치료하는 일을 했지. 그 일을 좋아했단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말콤 박사는 아동심리치료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낯선 남자가 집으로 침입한다. 그는 말콤 박사로 인해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며, 박사에게 원망의 권총을 겨누었다. 마침내 권총은 발사되고, 그 사내는 자살했다. 10년 전 말콤에게서 정신치료를 받던 빈센트라는 소년과의 약속을, 말콤이 깜박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 가을, 말콤은 콜이라는 소년을 만난다. 콜 역시 과거의 빈센트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편모슬하에서 자라는 정신불안증 환자였다.
치료에 전념하던 말콤은 콜이 영혼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고는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한다. 환시현상과 과대망상으로 일종의 아동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그만 손을 떼려한다. 하지만 콜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대화를 해나가는 가운데, 점차 콜의 진실을 믿게 된다.
한편 귀신들이 출몰하는 모습에 괴로워하던 콜은 말콤의 조언에 힘입어 무조건 도망 다니지만은 않게 되고,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알아내어 해결해주게 된다.
이렇게 콜의 공포심을 해결해줌으로써, 과거의 빈센트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 말콤. 그는 아내에게 돌아가지만, 마침내 알게 된다. 자신이 바로 귀신이었음을…….』
사고나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급작스런 죽음을 당하게 되면, 영혼은 그 자리를 맴돈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담겨진 특별한 애착을 해결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서 떠도는 영혼, 즉 중음신이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콜은 말한다.
“제 비밀을 말씀드릴까요?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꿈속에서?”
“아뇨.”
“깨어 있을 때?”
“예.”
“무덤이나 관에 누운 사람들이니?”
“아뇨, 보통사람들처럼 걸어 다녀요. 근데 서로를 보진 못해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거든요. 자기들이 죽었다는 것도 몰라요.”
“자주 보이니?”
“항상요. 사방에 있는 걸요.”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눈은 떠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지만 자신이 관심 두는 것만 보고 들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컨대 똑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식물학자는 풀과 나무를 유심히 볼 것이며, 조류학자는 새의 울음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할 것이다. 관광객에게는 즐거운 유람처가 되겠지만, 군인에게는 작전고지로서의 지형지물로 인식될 뿐이다.
문제는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마음의 애착이 풀릴 때까지 매번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그 주위를 맴돌게 된다. 영가를 위해서 사십구재나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은,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한편,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주는 법문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와 같이 마음속의 맺힘이 어느 정도 해탈되어져야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또 어디일까?□
달마, 이 영화를 말한다.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 일어남,
죽음은 한 조각 구름 스러짐.
뜬 구름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생사거래도 또한 그러할 뿐.”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 《석문의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