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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정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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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5년 08월 282호
낙산은 되살아나고 있었다.
얼마전 신문에서 잿더미 위로 고개를 내민 새순을 보고 신비롭다 했는데 이제는 부쩍 자라 온 산에 푸른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아직은 화마가 스치고 간 자리에 나무들이 신음하고 있지만, 장맛비가 화재의 흔적들을 씻어내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쑥한 얼굴로 방문자를 맞이한다.
그러나 늘 정겹던 홍예문이 보이지 않으니 들어서는 길이 낯설고, 제일 먼저 삼배하며 인사드리던 원통보전의 자취가 보이지 않으니 마음 둘 곳이 마땅치않다.
본래 무일물이라,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있던 자리 텅 비어 있으니 그 서운함과 공허함이 이를 데 없다. 그래도 원통보전 안의 건칠관세음보살님이 무사히 화마를 피해 교육원 안에 모셔져 있고, 의상대와 홍련암이 여여히 제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엄청난 화마가 낙산사의 주요전각들을 전소시킨 것은 식목일 새벽이었다. 양양의 야산에서 시작된 작은 불길이 강풍을 타고 확산되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더니 급기야….
정념 스님을 비롯한 낙산사 대중들에게 그날을 다시 기억해 내라고 주문하는 것은 고문과도 같은 일이다. 그보다 더한 악몽이 또 있을까.
산불이 나자 5일 새벽부터 낙산사는 비상이었다.
정념 스님은 먼저 원통보전 안의 건칠관세음보살님(보물 1362호)과 탱화, 홍련암 부처님부터 대피시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원통보전 뒤로 200m 방어선을 구축하고, 250여대나 되는 소화기를 구입해 나무에 물을 뿌리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나갔다.
그런데 소방당국은 생각이 달랐다. 오후가 되자 바다에서 부는 동풍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 당국은 동해보다는 서쪽에 힘을 쏟았다.
TV를 통해 동해는 안전하다는 예보를 들은 대중들은 방심하고 부처님을 다시 법당으로 모시려 하고 있었다. 이때 정념 스님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며 이들을 막고 나섰다.
예감이 안 좋았다.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대중들은 1시간 넘게 주변에 물을 뿌렸고, 암자의 지성 스님은 법당과 함께 하겠다는 각오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불이야!” 소리와 동시에 법당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도량 전체가 다 타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0분입니다.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어요. 분명 낙산사 뒤로 도로가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물을 뿌려댔음에도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불이 붙을 수 있을까 하고.”
인간은 시속 20k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불길의 위력에 속수무책이었다. 불은 신앙의 대상이자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한줌의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찰만이 아니었다. 마을을 덮쳐 100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념 스님이 낙산사에 온 지 15일 만의 일이었다. 스님은 “무엇보다 내가 기도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무겁게 말문을 연다.
낙산사 주지가 된 것도 예상치않던 일이었다. 봉정암 주지 임기를 아직 1년 여 남겨놓은 상태였는데, 낙산사 전 주지스님이 몸이 안 좋아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잠시만 절을 지켜달라는 주위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에 이런 충격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지난 4개월 동안 스님은 충격과 아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잿더미가 된 도량의 복구작업이 우선이었고, 당장 복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군인과 경찰병력뿐 아니라 조계종 복구지원단의 투입으로 복구는 무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실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불은 단순히 불이 아니었다. 불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었다. 정부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 하고 이재민들은 인재를 주장했다. 그 시간에 골프친 사람이 거론되는가 하면 산림청장의 퇴진 현수막이 나붙었다. 기자들의 시각도 다양했다.
그 속에서 정념 스님에게는 종합적 판단력이 요구되었다. 종교인으로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긍정적이면서도 이재민들의 입장에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방향을 제시해나갔다. 관계기관에 이재민들을 먼저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오히려 이재민들에게 성금과 상품권을 전달했다.
양양군에서 나온 9억원에 이르는 지원금도 이재민들을 위해 양양군을 위해 써달라고 다시 돌려주었다. 화재 이전부터 양양군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해 오던 일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낙산사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이번 초파일 제등행렬 때는 예년의 2배가 넘는 불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낙산사 복원 국비전액지원’ 보도 역시 낙산사에는 큰 시련 중의 하나였다. 당시 지원하겠다는 금액이 30억원. 그것은 불사가 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런데 불자들까지 낙산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오해하기 시작했고 타종교에서는 시기하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낙산사 복원불사비는 대략 15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님은 지원금을 상향조정하기위해 동분서주해야 했고 결국 88억원으로 결정되었다. 그래도 60억원 정도가 모자라는데 그것은 앞으로 정념 스님이 감당해야 할 몫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도 어려울 때 인심을 알아본다고 화재 이후 스님은 종단과 스님들, 불자들에게 감사드리고 있다. 복구지원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사찰단위로 성금을 모아 전달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스님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동안 인심을 잃고 살진 않았구나’ 하는 위안도 받고 있다.
낙산사 화재를 통해 거둔 성과가 있다면 악법 개정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사찰에서 나무 한그루를 베려 해도 문화재청까지 올라가는 등 번거롭고 기간도 몇 달이 걸려야 했다. 편리주의가 묶은 악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도량 방화선으로 신고만 하면 벨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찰에 지하실을 지을 수 없었는데 이번 화재를 계기로 그 법도 개정됐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발굴조사가 끝나는 10월쯤부터 본격적인 불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스님은 오히려 불사시기가 좀 늦추어졌으면 하고 있다. 백일기도라도 하고 불사를 해야 하는데 서울과 낙산사를 오고가는 동안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먹고 20일기도라도 해야겠다고 각오를 하고 있다.
불사기간은 3년에서 4년을 예상하고 있다.
60억원 정도가 모자라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주위에서 오히려 걱정을 하고 있지만, 스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불자가 천만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 해결할 수 없겠느냐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낙심하거나 끙끙대기보다는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잘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원력을 세워 기도하지 않았다는 증거지요. 죽을 각오로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겠습니까?”
낙산사에 있는 날에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절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불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사실 불사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이력이 나 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는 봉정암 불사를 일년에 천번의 헬기를 띄우는 방법으로 마무리했고, 오세암·개조암·신흥사 등 사는 곳마다 불사와 인연이 깊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부처님께서 불사를 위해 스님을 급히 낙산사로 보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사를 하면서 불사에 대해서 만큼은 나름대로의 관이 생겼다. 절은 크다고 좋은 것도 작다고 나쁜 것도 아니며, 자연과 사람과 불사가 어우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그렇게 집과 절을 지었는데 오늘날은 편리함만을 생각해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스님은 안타깝다. 낙산사의 기존 건물도 산자락을 넘어 부조화스러운 곳이 있다. 스님은 이번 기회에 그것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다.
이러한 기본 전제하에 원통보전이나 홍예문 같은 문화재급 건물들은 최대한 고증을 거쳐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고, 기타 신행공간은 현대의 필요에 맞게 편리함과 이용의 합리성을 고려할 예정이다.
“법당은 인등 과 연등으로 복잡한 것보다는 부처님 자비의 미소가 충만한 공간이 되게 할 작정입니다. 불자들의 신행공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형강당보다는 30~40명 정도의 동호인 내지는 전문가들의 강의와 토론이 항상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대형 행사보다는 작은 소그룹의 움직임들이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정념 스님이 추구하는 미래의 사찰은 상업화된 대형사찰보다 소박하고 부담없는 휴식공간 같은 사찰이다. 누구나 차를 가져 와서 마시고 갈 수 있는 공간도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낙산사 커피자판기는 누르면 나오도록 돼 있다. 정념 스님이 낙산사에 오자마자 실시한 일 중의 하나이다. 화재 이후 입장료를 받고 있지 않는데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무료입장을 유지하고 싶단다.
누구라도 와서 거부감없이 참선도 하고 산책도 하고 이슬에 옷 젖듯이 그렇게 불교문화에 젖어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또 하나 스님이 추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찰이다. 화재 이후 홍련암에서는 24시간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은 이도 스님이 오면서부터 추진하던 일이었다. 봉정암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해오고 있었다. 앞으로도 홍련암의 목탁소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불사 후 낙산사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정념 스님은 이번 불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어떤 직책에서도 떠나 있고 싶단다. 출가한 지 25년, 일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저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던 것 같기에 이제는 정말 걸망 짊어지고 정처없이 떠날 작정을 하고 있다. 과거 조사 스님들이 그랬듯이…….
아침 일찍 의상대에 올라 바다를 향하고 있노라니 붉은 해가 서서히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다. 운이 좋은 날이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홍련암 목탁소리가 붉게 달궈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