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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묻다(問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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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5년 08월 282호
서산에 기우는 햇살과 더불어 여름철 한낮의 치열함이 잠시 수그러들면, 밤은 고요한 날개를 펼쳐 중생의 짧은 휴식을 보듬는다. 푸른 산이 토해내는 시원한 숨결에 지친 대지도 한숨을 돌리고, 푸른 바람 한 자락에 흰 달빛을 살포시 둘러본다. 제아무리 덥고 찌는 더위라 할지라도 푸른 밤이 주는 한 자락 휴식을 어디에 비할까. 여름을 시작하는 발걸음 앞에서는 풀 섶 뒤에 풀벌레도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한다.
삼복 한중간, 대낮의 더위도 산 능성이 달이 뜨면 차고 청량한 기운으로 먼저 드는 것은 저 크고 밝은 보름달의 빛이 태양에서 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 온기까지는 채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빛은 낭만이긴 하나 그저 낭만일 뿐이라 그것에 마음을 얹어 잠시 쉬어갈 수는 있을 것이나 그 빛에 몸을 의지하여 생명을 자라게는 하지 못한다.
하늘의 저 달이 밝게 비친들 그 빛은 자재自在하지 못하고 태양의 힘을 빌린 것이니, 그 달빛이 달빛이라 할 것인가. 천千개의 강에 달 그림자가 내린들 그것을 달이라 할 것인가. 위태한 중생의 마음은 그 강을 위태롭게 출렁이고, 출렁이는 강물에는 잠시 빌린 그 빛마저 산산이 금빛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스승들은 간간이 손을 들어 달을 가리켰고, 옛 처사들은 달에게 물음을 던졌다. 달에게 묻는 일 그것이 문월問月이다.
실제로는 차고 기울기가 무상無常하기 그지없고 그 밝게 빛나는 달빛마저도 허망한 것에 진리를 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나 묻는 이의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가 문제일 뿐 어찌 하늘의 달빛을 탓하랴.
육조혜능 선사는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으니 달을 볼 때 꼭 손가락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달이 실제의 달이 아니요, 마음 속에 있는 그 어디일 뿐 아니겠는가. 대나무를 그릴 때에 대나무 그림자를 담지 않음이고, 달빛을 담음에 달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 것이니 이미 그 달빛은 마음의 것을 털어 놓는 것이며, 일렁이는 강물에 내려앉지도 않은 것이다.
예로부터 달을 가리키며 달빛에 그 마음을 담은 그림이 더러 있는데, 그 달빛은 때론 보름달이요, 때론 초승달이라 늘 같지는 아니하지만 이러한 그림을 두고 문월도問月圖라 하였다. 아마도 혜능 선사의 말씀을 그림으로 전해온 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주는 그림은 아니고, 산중에 몸을 담은 이의 벗쯤 달빛을 담은 그림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은 달빛을 벗 삼아 소나무 숲을 거닐기도 하고(송하보월松下步月), 달빛을 희롱하기도 하였다(완월翫月). 또한 달빛 아래 드리운 대나무의 은은한 그림자와, 만월 아래 만개한 매화의 그윽한 향기(월매月梅)는 이들의 오랜 친구였다.

탄은 이정(灘隱 李霆:1554~1626)의 문월도는 달빛은 물론이고, 달빛보다 빛나는 주인공의 미소가 더욱 인상적인 그림이다. 허름한 도포를 두르고 바위에 의지하여 걸터앉은 처사는 한 손을 번쩍 들어 달을 가리키고 얼굴은 파안破顔하여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는 더벅이고, 발은 벗었으니 달빛의 고아한 아취를 그의 풍모에서는 찾을 수 없고 다만 일탈의 자유로움만 허허롭다. 격식은 묵직한 바위 아래 접어두고 깨달음의 자유로움만이 남아 있으니 허술한 도포자락을 굵은 먹선으로 소략하고, 마른 붓질의 듬성한 머릿결로 일기逸氣를 드러내고 있다.
탄은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玄孫으로 원래 대나무 그림으로 역대 화가들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그의 묵죽은 문월도에서 사용한 필법과는 달라 일탈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단정하고, 기운 있는 대나무로 군자적인 아취를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그림에 능했다고는 전하나 남아 있는 작품이 없어 면면을 다 알 수 없으며, 인물화라고 전해 내려오는 그림도 이것이 유일한 것이다. 그러니 이 그림이 탄은의 것이 아니라 하여도 알 길이 없긴 하다. 다만 현대에 앞서 영조 대 큰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1727~1797)이 이 그림을 보고 제문을 남겨놓아 그 단서를 더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탄은은 달빛을 사랑한 화가였던 것 같다. 지금의 공주 탄천가에 별서를 마련하고는 ‘달이 먼저 오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선정月先亭의 편액을 걸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였으니 문월도의 경지가 그냥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급조된 것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보수保壽 스님이 호정교(胡釘:땜장이)에게 물었다.
“정교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공도 땜질할 수 있는가?” 물으니,“조각난 허공을 가져오십시오.” 대답이 떨어지자 보수 스님은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뒤에 말 많은 스승이 너에게 설명해줄 것이다.”
호정교가 뒤에 이를 조주 스님께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는가?”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방 터진 틈도 못 때우면서 그에게 허공을 조각내라는 거냐?”
호정교는 거기서 알아차렸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 이 한 방 터진 틈을 때워 보아라!”

허공을 조각내어 달빛으로 그 틈을 때우고자 하나 그 노력이 가상할 일이다. 영가(永嘉 674~713) 스님의 증도가證道歌 한 구절을 밤이슬에 적셔본다.

한 개의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비치니 一月普現一切水
모든 물의 달을 한 개의 달이 잡아 쥐네. 一切水月一月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