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기우는 햇살과 더불어 여름철 한낮의 치열함이 잠시 수그러들면, 밤은 고요한 날개를 펼쳐 중생의 짧은 휴식을 보듬는다. 푸른 산이 토해내는 시원한 숨결에 지친 대지도 한숨을 돌리고, 푸른 바람 한 자락에 흰 달빛을 살포시 둘러본다. 제아무리 덥고 찌는 더위라 할지라도 푸른 밤이 주는 한 자락 휴식을 어디에 비할까. 여름을 시작하는 발걸음 앞에서는 풀 섶 뒤에 풀벌레도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한다. 탄은 이정(灘隱 李霆:1554~1626)의 문월도는 달빛은 물론이고, 달빛보다 빛나는 주인공의 미소가 더욱 인상적인 그림이다. 허름한 도포를 두르고 바위에 의지하여 걸터앉은 처사는 한 손을 번쩍 들어 달을 가리키고 얼굴은 파안破顔하여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는 더벅이고, 발은 벗었으니 달빛의 고아한 아취를 그의 풍모에서는 찾을 수 없고 다만 일탈의 자유로움만 허허롭다. 격식은 묵직한 바위 아래 접어두고 깨달음의 자유로움만이 남아 있으니 허술한 도포자락을 굵은 먹선으로 소략하고, 마른 붓질의 듬성한 머릿결로 일기逸氣를 드러내고 있다.
탄은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玄孫으로 원래 대나무 그림으로 역대 화가들 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그의 묵죽은 문월도에서 사용한 필법과는 달라 일탈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단정하고, 기운 있는 대나무로 군자적인 아취를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그림에 능했다고는 전하나 남아 있는 작품이 없어 면면을 다 알 수 없으며, 인물화라고 전해 내려오는 그림도 이것이 유일한 것이다. 그러니 이 그림이 탄은의 것이 아니라 하여도 알 길이 없긴 하다. 다만 현대에 앞서 영조 대 큰 수장가였던 김광국(金光國:1727~1797)이 이 그림을 보고 제문을 남겨놓아 그 단서를 더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탄은은 달빛을 사랑한 화가였던 것 같다. 지금의 공주 탄천가에 별서를 마련하고는 ‘달이 먼저 오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선정月先亭의 편액을 걸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였으니 문월도의 경지가 그냥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급조된 것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보수保壽 스님이 호정교(胡釘:땜장이)에게 물었다.
“정교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공도 땜질할 수 있는가?” 물으니,“조각난 허공을 가져오십시오.” 대답이 떨어지자 보수 스님은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뒤에 말 많은 스승이 너에게 설명해줄 것이다.”
호정교가 뒤에 이를 조주 스님께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는가?”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방 터진 틈도 못 때우면서 그에게 허공을 조각내라는 거냐?”
호정교는 거기서 알아차렸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 이 한 방 터진 틈을 때워 보아라!”
허공을 조각내어 달빛으로 그 틈을 때우고자 하나 그 노력이 가상할 일이다. 영가(永嘉 674~713) 스님의 증도가證道歌 한 구절을 밤이슬에 적셔본다.
한 개의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비치니 一月普現一切水
모든 물의 달을 한 개의 달이 잡아 쥐네. 一切水月一月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