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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空虛한 구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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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영덕 2005년 08월 282호
소중한 한 분을 만났다. 근대 중국의 대재난 속에서 시대의 질곡을 온 몸으로 감당하며 보살행으로 일관하신 분. 머무는 곳마다 원력이 있고 제불 보살이 그것을 인증하시니 돌 언덕 깊은 곳에서 은은히 석종石鐘이 울려 퍼지며, 썩은 매화 등걸과 밤나무 고목 채소 잎 위에서도 큰 그릇만큼씩 한 우담화가 만개하여 꽃마다 불상을 담고 있었다. 눈을 빌면 눈이 오고 비를 빌면 비가 내리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의 진실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스님 회상에서는 나무 돌 소 여우 호랑이마저도 평등하게 명을 보존하고 계를 받는다. 날마다 중생들을 접견하여도 피로한 기색이 없고, 겸손하면서 점잖았으며 온화하면서도 진지하였다. 덕을 이루는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행위가 겸손이라는데 나는 무한수의 영덕이면서도 겸손이 가장 어렵다. 스님을 통해 간절히 배울 것이 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일인 줄 안다.
시경詩經의 대의가 사무사思無邪, 예기禮記의 대지가 무불경毋不敬, 주역周易의 대지는 구이시종懼以始終이라던가. 그는 한 생각도 사사私事와 삿됨이 없다. 젖은 눈을 들어 먼저 가신 스승을 우러러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며,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하여 오대산 문수보살님을 친견하러 수천리길을 삼보 일배로 몸을 잊었다. 그의 언행은 두려워함으로써 시작과 마침에 조심하고 근신하여 흉凶을 돌이켜 길吉이 되게 하지만 한번 세운 뜻은 중도 폐하거나 자기 합리화하지 않으며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구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청淸나라 말 열강에 찢기는 조국과 고난에 지친 동포와 함께 흘린 눈물은 주름을 타고 흘러 강이 되었다.
스무살 나이에 기러기처럼 고향을 등지고 남쪽을 유행하였지만 차마 고향과 부모님 처자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조차 지울 수 있었을까. 불효에 대한 슬픔으로 풀 위에 쓰러져 오열을 참는 장부의 심정을 보며 세속의 일은 잊은 지 오래라지만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 오히려 금강석보다 견고한 불교정신으로 회향되었으리라. 마음은 번뇌의 근원이니 근원이 올바르면 만물이 편안하고 천하가 태평스럽고 세계가 편안해지는 것, 인간심리를 정화시키는 적극적 혁명인 불교 사업은 영원히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악습이 만연된 그의 출가 본사 용천사를 정리하는 태도는 단호하다. “저는 우선 본산의 승적을 정돈할 것이며 율법과 계율도 다시 정돈할 것입니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않거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모두 계율에 의거해 처리할 것이니 죄가 가벼우면 향판香板으로 치고 죄가 무거우면 하산시킬 것입니다. …이곳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보살의 도행道行과 불심佛心을 행하는 출가인이지 의식衣食을 속여 가며 자기의 안일만을 꾀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함부로 시비를 논하지 말며 말을 삼가고 정숙히 행동하십시오. 장엄하고 공손하며 경건하십시오” 그 어려운 시절에도 안으로 오가칠종五家七宗의 본산을 재흥하고 끊임없는 개간과 생산 활동,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쉬지 않으며, 밖으로 난민과 고아를 구출하는 빈민사업과 아미타불 염불운동을 확산하여 도탄의 민중에게 돌아갈 곳을 알게 하신 분. 불교개혁의 구심점이었던 백이십 세의 원력보살의 일생을 돌아보며 또 한 분의 스승을 가슴에 모시는 나는 행복하다. 아! 허운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