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구하는 자에게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할 뿐. 이 날이 마지막이듯 가볍게 또 무겁게 살아야 하련만. 돌아서 오는 길은 마른 꽃향기 코끝에 스치듯 알 수 없는 슬픔에 목메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한줄기 바람에도 울고 웃고 합니다. 어머니 아마 이것이 이생의 마지막 눈도장임을 예감합니다. 당신을 위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미안함에 뒤척일 것 같아 결국 산 사람 마음 편하고자 마련한 자리이긴 하지만 그렇게 모든 가족이 함께 한 시간은 참 행복하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라는 이름 앞에 먼 길도 마다않고 모일 수 있는 가족임은 어머니 당신 교육의 힘입니다. 큰딸 시집보낼 때 함께 보낸 오죽烏竹 한 그루가 이젠 대숲을 이루었듯 어머니의 한평생은 그러하셨습니다. 제가 당신 그늘에 있을 때 쓰여지고자 하는 곳이 아니면 풀어지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습니다. 서고 싶은 그 자리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곳에 풀어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지요. 부단한 나래 짓, 오르기 위한 몸부림,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 그러면서도 외유내강의 미덕을 잃지 않으려던 시절, 도서관에서 저물어 돌아오면 당신께서는 할머니의 대를 이어 여전히 대문 앞에서 서성이셨고 더위 속에서 원추리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꽃 속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얼굴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하나를 위하여 부차적인 것을 수용하지 않던, 모든 것을 걸고 싶었던 내 젊은 날의 자화상을 만날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이 길에서 공명功名 대신 고독을, 부귀 대신 무소유를, 야망 대신 정리情理를 새기며 외딴 길을 택해 살겠습니다. 불필요한 말 행동 눈빛 모두 버리고 맡은 바 일에 말없이 충실할 뿐. 자기 자리에 반듯하게 서며, 지계持戒 잘 지키고, 학인들 잘 가르치는 그 일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오로지 삼업三業을 맑히고 한마음 청정하여 이대로 불전에서 회향하기를 맹세합니다. 무사는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는다지요. 저도 스스로 선택한 종언지처終焉之處에서 그곳에 뼈를 흩을 때까지 어렵지만 어려움 없이 살겠습니다. 연이 모이면 모이는 대로 연이 흩어지면 흩어지는 대로 결국 철저한 자기와의 대면이 있을 뿐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여 변화하며 지금은 좀 어렵고 괴로워도 결국 자기완성에 도달하리라는 결론을 가지고 말입니다. 삶의 격랑 한가운데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할 때 다시 혼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문으로 들어온 객진번뇌는 문으로 나가게 버려두고 이제 내가 몰두해야 할 일은 인내와 자기정화입니다. 조용하게 침착하게, 망념을 없애겠다는 생각조차 없는 무심한 자리로 돌아 가야합니다.
눈 밟으며 들길 가는데 비틀걸음 걷지 마소. 오늘 나의 발자취 뒷사람의 이정표 되리니.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西山>
※ 유월流月은 음력 6월六月의 다른 이름. 유두流頭가 있는 달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