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 발생의 근본원인은 탐욕
불교에서는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이 인간의 탐욕에 있다고 본다. 동국대 불교학과의 김종욱 연구교수는 그의 저서인 《불교생태철학》에서 세상의 실상과 이치인 다르마에 대한 무지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소유와 욕망의 무한증대를 갈구하는 탐욕,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양분을 조장하는 분별심, 서양과 백인과 남성이 중심에 서서 지배해야 한다는 왜곡된 인간중심주의의 아집 등이야말로 무명의 소산이라고 규정한다. 이어 분별과 지배를 낳는 무명에 대한 불교의 근본적인 통찰은 생태계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기이므로 무상無常 무아無我이고 무자성無自性의 공空이어서 자비慈悲이다는 것, 즉 일체가 무수한 조건들에 의해 상호의존하여 성립하므로 영원 불변한 것도 동일하게 남아 있는 자아도 없고 고정된 실체성도 결여한 것이어서 자기만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것에 대한 무지를 의미한다.”(《불교생태철학》, 19쪽, 동국대출판부)
이 같은 통찰은 환경운동과 생태학, 사회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와 실제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제는 보편적인 삶의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는 불교방송의 ‘불교학자와 생태학자의 대화’라는 대담프로그램에서 “불교는 생태학보다 훨씬 큰 학문이고 철학이기 때문에, 그 안의 지혜가 생태학 쪽으로 들어오면, 생태학적인 접근 방법들에는 상당한 자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환경활동은 불교신앙의 실천행
삼독심을 끊어 해탈에 이르게 하고, 자비를 실천해 뭇생명을 복되게 하는 일은 불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이다. 예배하고, 수행하는 등의 행위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며 신앙이다. 이런 신앙의 행위가 지극함에 이르러 안팎이 분리되지 않고 여여할 때, 이를 초기불교에서는 아라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보살이라고 불렀으며,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환경보살은 폐허화로 치닫는 삶터의 생명력을 되살리고,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의존하면서 조화와 균형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거룩한 행위를 가장 큰 목표와 가치로 여기는 삶의 표상이다. 고영섭은 “생태적 보살은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존재이기에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인간”이라고 개념짓고, 연기이므로 공空이며, 그럼으로 자비행으로 나아가는 환경보살의 삶을 현재의 불교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한다.
“인연으로 생겨난(緣起) 것은 스스로 그러한 성품이 없기(無自性) 때문에 실체가 없다(空)는 사실을 자각했기에 자비행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많아지는 사회가 극락이요 정토요 천당인 것이다. 때문에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불교의 담론과 실천은 붓다의 연기론과 보살의 자비행으로 표현된다.
‘연기’와 ‘자비’, 이 코드에서 불교적 인간, 보살적 인간, 이타적 인간이 탄생되는 것이다.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담론과 실천은 연기에 대한 사무친 통찰을 통해서 자비를 실천하는 보살적 인간, 이타적 인간상의 제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영섭, 《연기와 자비의 생태학》, 9쪽, 연기사)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을 이치인 양 또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것처럼 여기는 것에 대해 석가모니는 일찍이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는 비유를 들어 경계한 바 있는데, 불교에서는 환경 문제의 발생 원인을 탐욕과 연기의 이치를 망각한 무명과 무자비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불교의 환경활동은 환경이라는 특정한 부문의 개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불교의 환경활동은 삶의 자연적·인공적 조건을 쾌적하게 유지시키는 선행이면서, 동시에 탐진치 삼독심을 여의게 하고, 연기와 자비로써 삶의 지침을 삼아 온 삶을 회복하게 하는 신앙의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