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푼비빔밥
앞서 말한 양푼비빔밥 보시를 보면서, 베푸는 것이 결코 거창한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양푼같이 만만하고 널찍한 마음에 내가 갖고 있는 무엇 하나라도 버무려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
그러다 보니 쉽게 보시할 수 있는 메뉴들이 또 줄줄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식은 밥이라도 단무지 다져 넣고 통깨랑 참기름 슬쩍 넣어 비빈 다음 김에 말아 썰어내면 큰 공 들이지 않고 김밥을 쌀 수 있다. 감자가 으깨지도록 오래 끓인 국물에 수제비 반죽을 뚝뚝 띄우면 예산이 적더라도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으며, 삶은 계란을 다져서 마요네즈에 버무린 다음 식빵에 척 발라내면 우유 한 잔과 잘 어울린다. 미역과 쌀을 볶다가 물을 붓고 죽을 쑤면 소금간만 하여도 영양가 있는 별식이 되고, 다진 김치에 설탕과 고추장, 식초로 간을 맞춰 냉면 사리를 비벼내면 입맛 잃은 이들에게 힘이 될 것.
이러한 노력을 집 밖이든 집 안이든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들 베풀라고 하면, 집 밖에 나가서 나보다 처지가 딱한 사람만 도와야 하는 줄로 알지만 집 안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의 거리 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결국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기만족밖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밥하기 귀찮은 초여름 저녁이라도 간단하게 차린 식탁으로 가족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그것이 곧 ‘봉사’다.
나의 외할머니는 형편도 넉넉하셨거니와 동네에서 알아주는 손맛을 내셨던 분이어서, 외갓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이웃들은 대문간에 서성였다고 한다. 손이 큰 어르신답게 왕창 왕창 버무려서는 가족들 겨우 먹을 양만 덜어내고 이웃에 보시하셨단다. 학창시절, 두 외삼촌의 친구들은 먹을 것이 떨어졌다 하면 우리 외갓집으로 찾아왔고, 외할머니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밥을 먹여 돌려 보내셨다 한다. 그런 외할머니를 가장 빼 닮은 내 엄마. 여섯 형제 중 외할머니의 손맛과 푼푼한 마음씨를 유일하게 물려받은 엄마는 참으로 실속이 없다. 남편에, 자식들에, 시집에, 친구들에는 물론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에게까지 이해와 도움을 주며 산다. 딸인 나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어 엄마더러 ‘바보’ 같다고 삐쭉대고. 엄마는 외할머니가 베풀며 살아서 당신이 좋은 생을 누리는 것처럼 이리 베푼 마음이 나와 동생에게로 다 돌아올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 엄마의 믿음과 정성을, 베푸는 마음을 잘 물려받으려면 이기적인 내가 쌓아야 할 덕이 너무나 멀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