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대교를 건너자 마자 강화역사박물관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큰길가의 삭막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너른 들판, 살포시 내려와 쉬고 있는 듯 편안한 산자락, 그들 품에 안겨둥지를 틀고 있는 사람들. 지금은 모내기 철이다. 산은 이미 생명의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절정을 치닫고 있는데 들은 이제 준비가 한창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사지’와 그 아래에 작은 농가 한 채가 있을 뿐이었다. 93년 현재의 주지인 성원 스님이 선원사 복원불사의 원력을 세우고 자리잡으면서 비로소 사명을 되살려 놓았다.
초파일 직전이라 절은 분주했다. 마당에서 등줄을 매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한 스님께 주지스님 계신 곳을 물으니, 아마 작업장에 계실 거라며 길 건너 맞은편 포크레인 공사가 한창인 곳을 가리킨다.
그늘은 서늘해도 볕은 꽤 뜨거운데 스님은 모자조차 쓰지 않고 인부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지시하고 확인하고 있었다. 체구는 작지만 다부지고 부지런한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스님은 잠시 바쁜 일손을 멈추고 기자를 논 한가운데 있는 정자로 안내한다. 무슨 정자가 논 사이에 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주변의 논들이 모두 연밭이다.
성원 스님은 현재 선원사 앞 만천여평에 이르는 논에 연을 재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변의 땅들이 모두 선원사 소유? 그러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는 않고 대부분 임대란다.
아직은 연이 올라오는 중이라 잎이 작고 물에 잠겨 있어 모르지마는 잎이 커지고 꽃도 피기 시작하면 장관을 이룬다. 그리하여 선원사에서는 연꽃이 만개하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연꽃축제를 연다. 올해가 벌써 3회째.
정자에는 차와 다기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아마 스님은 주로 정자에서 손님을 맞는 모양이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5월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마시는 차맛이 실내와 비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연꽃이 필 때쯤이면 이곳은 명당 중 명당이 된다.
차맛이 색다르다 싶었는데 연잎차란다. 선원사에서 재배한 것이다. 스님은 단순히 축제용으로 연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상품화하고 있었다. 연은 뿌리에서부터 잎, 꽃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단다.
차도 만들고 떡, 과자, 빵은 물론 막걸리, 냉면도 만든다. 심지어 연잎 먹은 돼지삼겹살도 있단다. 연잎 먹은 돼지고기는 체내에서 지방이 응고되지 않고 그대로 분해되는 효과가 있는 웰빙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연꽃 축제 때는 이 모든 제품들이 총출동해 관람객들에게 판매될 참이다.
스님은 낼 모레 초파일 준비보다 연꽃축제 준비에 더 여념이 없어 보인다. 올해는 공연을 준비하는 등 더욱 다양화할 예정이다. 포크레인 공사도 연꽃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주차장도 곳곳에 만들고 앉을 좌석도 늘리고 있다. 작년까지는 1천5백명 정도가 왔는데, 올해는 3천명을 예상하고 있다.
성원 스님이 선원사지를 알게 된 것은 전등사에서 천일기도 중이던 91년이었다. 천일기도를 시작하면서 애초 세운 원은 불교복지타운 건설이었다. 불교계의 낙후된 복지현실을 업그레이드 시킬 방안을 찾고 있었다,
10살부터 사찰고아원에서 자란 탓에 복지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승가대학 논문도 불교복지실태조사였다. 논문을 쓰면서 18년 이상된 복지시설은 빼놓지 않고 가보았다. 복지에 있어서 불교는 챙피할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그런데 기도 중 선원사지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선원사 복원불사라는 원이 하나 더 늘었는데 결과적으로 복원불사가 우선이 되었다.
성원 스님은 93년 4월 선원사지 아래 3백여평의 땅을 구입하였고, 11월 회향하자마자 거처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오두막 한 채 달랑 있던 곳에 94년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사라는 간판이 붙게 되었고, 95년 법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바로 논을 임대해 연농사를 시작했다. 올해로 8년째에 이른다. 연은 아직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라고 스님은 생각하고 있다. 재배한 연을 갖고 직접 상품화시키기까지 한다. 아직 냉면은 예외지만 앞으로 냉면공장까지 지을 생각이다.
따져보니 성원 스님이 선원사에 온 지 만으로 12년째에 접어들었다. 12년 동안 스님은 사지 주변을 선원사 타운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길다면 길고 뭉그적거리다보면 허송세월 보낼 수도 있는 기간에 결과가 무척이나 뚜렷하다. 그동안 스님이 얼마나 열심히 지내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것이고 그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신망이 두텁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농사가 벼농사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은데다 논을 도지낼 경우 일반적인 도지율과는 반대로 7을 농민들에게 주고 3을 절에서 갖는 식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민들이 연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쌀농사 지으면 수익이 평당 2천5백원 정도에서 풍작일 때 3천원 정도인데 비해 연꽃은 평당 2만5천에서 3만원, 잘하면 4~5만원까지도 갈 수 있단다.
성원 스님은 연재배 농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 지금은 1만평에 지나지 않지만 50만평을 예정하고 있다. 300세대 중 250세대와는 계약을 이미 끝낸 상태다. 연의 생산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스님은 현재 강화군 농업기술센터 관광농업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강화도 전체를 연단지화 하겠다는 생각이다. 다음해에는 농림부의 지원도 예상하고 있다.
성원 스님은 전국 사찰에도 연재배를 적극 권하면서 분양도 해주고 원하면 농사의 노하우도 전수해주고 있다. 지난해 연꽃마을 1천여평의 논에 연을 보급했고 송광사에는 홍련을 보냈다.
연을 재배하는 절이 선원사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곳이 선원사뿐이다. 절에서 연을 재배할 경우 스님들이 차를 마시기 때문에 최소한 차를 사먹지 않아도 되고 남으면 선물도 주고 더 남으면 팔 수도 있다며 남으면 남았지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며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찰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원사에서는 연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다. 근처에 숯찜질방도 운영하고 있다. 땅값까지 쳐서 12억이 들어간 찜질방에는 평일은 하루 100~150명, 공휴일에는 300명이 왔다 갈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선원사에는 우사도 있다.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된 바 있는 ‘목탁소리 내는 소’를 보고는 사온 것인데, 최근에는 새끼 한 마리까지 낳았다. 스님은 그 소를 ‘우보살’이라 부르는데, 이를 보러오는 이들의 수가 또한 만만치 않다.
스님이 이렇게 사업을 벌이는 데는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찰이 신도들의 시줏돈과 관광수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그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찰마다 논이 많아요. 거기에 연농사를 권하고 싶고, 산이 많으니 그 나무를 이용해 찜질방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자연스레 조림도 되지요. 연농사와 찜질방을 꼭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또 하나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선원사 예술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번 연꽃축제 때는 아마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란다.
스님은 사업수완을 타고난 듯 하다.
일찍이 80년대 중반 해인사 강원에서 서기 보던 시절에는 도반들과 함께 사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원에서 불교용품판매점을 운영한 적도 있다. 당시 사중에서는 특히 선방에서, 절이 너무 속화된 모습을 보인다며 반대가 극심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찰마다 불교용품점 없는 곳이 없고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경제면에서 스님은 일찍이 사고가 깬 사람이다.
선원사에는 법회에 나오는 신도보다 여타의 사람들이 더 들락거린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 소 보러오는 사람, 찜질방 오는 사람 등등. 성원 스님은 그들 모두가 선원사 신도라고 한다. 자연 종교가 다를 수도 있지만 스님에게 그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동안 스님의 삶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부모를 떠나 절에 들어와서도 절문을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였다. 자연 고생도 무척 많이 했다. 공장에 다녀보기도 했고 8마지기의 논농사를 머슴처럼 혼자 짓기도 했다. 나무하러 수락산 꼭대기를 오르내리다 굴러떨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복을 타고났는지 지금도 여전히 일이 많다. 주변사람들은 스님의 일솜씨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스님은 지금이 가장 편안할 때란다. 몸과 마음 모두가. 스님은 신도들에게 법문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말로 하기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는 스님이 너무 사업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스님은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마음먹기 달려 있다고 하지만 불사든 포교든 재정적 뒷받침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선원사지 복원도 해야 하고 포교도 해야 하고, 어려운 이웃에 눈도 돌려야 한다. 그러나 의외로 크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만큼만 하겠단다.
그럼에도 10년 후쯤 선원사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은근히 기대가 생긴다.
아직 이른 철임에도 연밭에 홍련 다섯 송이가 피었다. 진흙탕 논위로 솟아오른 자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