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록의 5월은 여기서도 바쁘게 지나갔다. 우선 남가주 사원연합회 주최 부처님오신날 합동 봉축법회가 있었고 이어 각 사찰에서도 봉축 행사를 가졌다. 평소 기독교 소식 일색이던 한인신문의 종교란에도 부처님오신날의 행사 소식이 연일 등장하는 걸 보면 부처님오신날은 이곳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일년 중 사회적으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불교계 행사인 것 같다. 내가 다니는 절에서도 행사 며칠 전부터 사찰 안팎을 장엄하고 준비를 했다. 초파일 연등 접수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 심지어는 미국 사람도 연등을 달고 이민 온 가족 중에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들도 어김없이 연등에 이름이 올라간다. 올해는 다행히 부처님오신날이 일요일이라 평소 절에서 뵙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오셔서 연등도 접수하고 법회도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되고 외로운 이민 생활 속에서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은 모든 불자들의 마음에 더없이 소중한 날임을 알 수 있었다. 오전에 관욕 법요식과 봉축 법요식을 봉행하고 점심 공양을 한 뒤 저녁에 우리 절 식구들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면서 직접 만든 연등을 들고 절 주변을 돌며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하였다.
5월의 LA는 이와 같은 불교계의 행사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한국 관련 문화행사도 많이 열렸다. 먼저 한복 패션쇼와 태권도 시범과 한국 차를 알리는 한국 문화 페스티벌이 있었고, 최근 생긴 디즈니 홀에서는 한국의 고유 춤과 판소리 등의 한국 전통 음악제도 열렸다. 이러한 행사에는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민족들도 참가하여 우리의 멋과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축제를 열어 풍성한 5월을 더하였다. 미국에서 각 커뮤니티는 다양한 행사를 통하여 자국의 문화를 알리고 결속력을 다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도 상당하다. 이번 호에는 재미있는 초등학교의 기부금 모금 축제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미국의 초등학교는 공립학교라 할지라도 늘 기금 모금을 하며 각 교육구마다 심지어는 학교마다 학생이 배우는 교과 내용이 다르고 방학이나 행사 일정도 다 다르다. 가장 심한 경우는 잘사는 동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는데 비해 못사는 동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평등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미국은 교육에서조차도 철저히 자본주의적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LA에서는 그런 대로 유명한 공립초등학교로 한국인 교장선생님은 헌신적인 교육적 열정으로 지역사회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기도 하다. 한국인 선생님들도 몇 분 계시고 학급 중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진행되는 반도 운영되고 있다. 모든 학교 안내문은 영어와 한국어로 발행되기에 그때 그때 학교 소식을 잘 알 수 있어 편리하다. 학교는 컴퓨터 교육과 음악, 미술 등의 교육을 제공하며 방과 후에도 5시까지 아이들이 자유로이 학교에서 놀 수 있다. 언뜻 듣기에 한국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예능 교육이 이곳에서는 학교의 재정 상태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돈이 없는 학교는 미술과 음악 등의 수업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매년 5월 세 번째 토요일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에서는 기부금 모금을 위한 대대적인 규모의 축제가 열린다. 학교 축제의 큰 테마는 침묵의 경매이다. 몇 달 전부터 학부모에게 물건과 놀이시설 등의 티켓 등 여러 가지 물품 제공을 요구한다. 이러한 물건과 상품권들은 모두 경매에 붙여진다. 축제 당일 학교를 가보니 학교 전체는 마치 놀이 동산처럼 변해 있었다. 운동장에는 임시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각 놀이 기구마다 입장 티켓을 받는다. 전부를 다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은 25달러나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는 팔에 이 티켓을 하고 있었다. 학교 한 가운데는 바로 학부모와 단체로부터 기부 받은 각종 물건과 상품권이 전시되어 말없이 자기가 원하는 가격을 적는다. 여러 명 중에 가장 가격을 높이 적은 사람이 가져가게 되는 경매 방법이다. 학교 선생님 코너에는 어느 어느 선생님과 함께 영화 보고 저녁을 먹고 박물관을 같이 갈 수 있는 일정을 경매를 하고 있었다. 경매에 참가한 아이들은 그 경매에서 이기게 되면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그들이 선택한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파는 미니 가게들이 즐비하다. 평소의 2배 가까운 가격으로 팔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사준다. 우리의 경우만 하더라도 평소에 기부를 많이 하지 않기에 이런 기회에 학교 모금에 참석하고 싶어 선뜻 여러 가지를 사먹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내고 오랜만에 만난 학부모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하느라고 바쁘다. 아이가 세 명인 부모는 평균 150달러를 쓰고 두 명의 아이를 가진 부모는 100달러, 한 명의 아이는 50달러 정도를 쓰고, 경매에 참가하게 되면 더욱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렇게 모금된 돈은 공개되고 또 어디에 쓰였는가도 공개된다. 바로 우리의 참여가 아이의 교육환경 개선에 직결된다고 누구나 알 수 있게 쓰이는 것이다.
그날 저녁 식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미국식의 기부문화와 자본주의적인 발상이 좋은지 어떤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어차피 자본주의 나라에 살기에 선생과 저녁을 먹기 위해 경매에 참가해야 하지만 적어도 그 돈은 선생 개인에게 가지 않고 학교 발전기금으로 쓰이기에 결국 모든 아이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에는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 자기 아이만을 잘 봐 달라는 음성적인 뇌물이 아니라 떳떳하게 학부모도 기부를 하고 학교 쪽에서도 당당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그런 기부제도가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도 하루 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