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오도견색명심聞聲悟道見色明心이러니운문 선사가 대중에게 일렀습니다.
“소리를 듣고서 도를 깨닫고 빛을 보고서 마음을 밝힌다.
어떤 것이 소리를 듣고서 도를 깨닫는 것이며
색色을 보고서 마음을 깨닫는 것인가?”
이에 대중들이 묵묵히 말이 없으니 선사께서 대신 대답하였습니다.
“관음보살이 돈을 가지고 와서 호떡을 샀는데 손을 내리고서 보니 호떡이 아니라 만두더라.”
흔히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았다’고 함은 향엄이 대나무를 기왓장 조각으로 치고서,
그 소리에 마음이 밝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색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고 한 것은 영운 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도를 깨달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지금 일상생활에서 소리를 들을 때가 증득할 때요, 색을 볼 때가 증득할 때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운문 선사는 문성오도聞聲悟道와 견색명심見色明心을 대중에게 묻고는,
잠시 후 스스로 ‘손을 들고서 호떡을 샀는데, 손을 내리고 보니 호떡이 아니라 만두더라’고 대답을 합니다.
운문 선사는 진존숙 선사에게 법을 물으러 갔다가 문 앞에서 계속 쫓겨났습니다.
삼일째 되던 날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진존숙은 다짜고짜 멱살을 쥐고서 대뜸 “말해봐라! 말해봐”라고
하면서 다그쳤습니다. 놀란 운문 스님이 우물쭈물하자 “아무 쓸모없는 놈이구나” 하고
바로 문밖으로 밀쳐내면서 오른발이 나오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 순간 참선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고 뒷날 진존숙의 천거로 설봉의존 선사를 만나 그의 법을 잇게 됩니다.
하지만 선사는 그 대가로 평생 발을 절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법을 위하여 몸을 잊은 위법망구라고 할 것입니다.
그 후 운문산에서 30여 년을 머물면서 후학들을 제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문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부처를 뛰어넘고 조사를 뛰어넘는 말씀을 청하자
‘호떡’이라고 대답한 그 격외의 한마디로 모든 이의 입을 근원으로부터 막아버립니다.
아시다시피 호떡은 운문 선사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운문 선사께서 어느 날 결제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숭수崇壽 스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숭수 스님이 창문 너머로 호떡 만드는 스님을 보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보이느냐?”
그러자 호떡을 만드는 스님이 창문 쪽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호떡 값을 되돌려다오.”
그러자 이 말을 듣고도 호떡을 만들던 그 스님은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운문 스님의 이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는 대중들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놈들도 호떡화로에 절이나 하거라.”
호떡을 만들던 옛날 그 납자도 안목이 없는 놈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지금 대중도
모두 깜깜하기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선사의 목소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문 선사께서 공양을 하면서 한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호떡을 몇 개나 먹었느냐?”
“세 개 먹었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는 호떡을 들고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몇 개째냐?”
대꾸가 없자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을 속이는 자는 망한다.”
호떡 하나를 먹으면서도 거기에는 문답이 오고가기 마련입니다.
결제공부를 하는 납자는 설사 맛있는 호떡을 먹고 있을지라도 화두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또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선사의 일상사였기 때문입니다.
그 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납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너는 호떡을 몇 개나 먹을 수 있느냐?”
세 개 먹었다는 스님의 말은 이미 답변이 아닌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잊었습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또 물었습니다.
“먹은 것을 잊었는가? 안 먹은 것을 잊었는가?”
“잊었다는데 무슨 먹고 안 먹고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운문 선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이미 잊어버렸다고 하니 이제 호떡을 어디에서 얻어 올 수 있겠는가?”
선문답은 어떤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날 호떡공양이 있는 날 이렇게 물었습니다.
“호떡을 몇 개나 먹었느냐?”
“네 개 먹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콧속의 수염이 뿌리가 하나인가?”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없는 허망한 말이 되어버렸구나.”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처음을 조심해야 하며 끝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사께서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호떡은 너희들이 씹는 대로 씹힌다. 그것을 떠나지 말고 한마디 해보거라.”
대중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대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새로 만든 국수구나.”
어떤 것이 소리를 듣고서 도를 깨닫는 것이며 색을 보고서 마음을 깨닫는 것인가라고 대중에게 물으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스스로 관음보살이 돈을 가지고 와서 호떡을 샀는데
손을 내리고서 보니 호떡이 아니라 만두이더라고 대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운문 선사께서 십자네거리와
만사람이 모인 가운데에서 재를 바르고 흙을 문지를 줄 아는 것이며 귀신같이 나타나고 귀신같이 없어질 줄
아는 것입니다. 하안거 결제를 하는 눈 밝은 납자들은 이러한 도리를 놓쳐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입니다.
이는 동쪽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서쪽에서 일어서고, 남자의 몸으로 선정에 들었다가
여자의 몸으로 깨어난 것입니다. 들판의 경치는 산천 때문에 막히는 일이 없고
달빛은 곧장 연못의 물과 통하기 마련입니다. 이번 안거철에도 이 세상에 한번 안 난 셈치고
자기마저 잊어버리는 정진삼매를 통하여 ‘운문성색雲門聲色’의 도리를 타파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산승이 결제대중을 위하여 한마디 하겠습니다.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는다고 하나 도에 어찌 소리가 있겠으며,
색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고 하나 마음에 어찌 색이 있겠습니까?
영광독요형탈근진靈光獨耀逈脫根塵이로다.
홀약근진개변법계忽若根塵皆法界하니
우자마생又作生고
장위시만두각시호병將謂是饅頭却是餠이로다.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서
육근과 육진을 아득히 벗어나는구나.
홀연히 육근과 육진이 법계에 두루하니
또 어찌하겠는가?
만두라 여겼더니 도리어 호떡이구나.□
불기2549(2005)년 하안거 결제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