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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중들에게 저지른 허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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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05월 279호

“나는 지금 수세受歲를 하고자 한다. 내가 대중들에게 저지른 허물은 없는가?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범한 일은 없는가?”
어느 때 부처님께서 5백명의 비구들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자 두 번, 세 번 물었다.
사리불 존자가 일어나 말했다. “모든 비구들은 여래의 몸·입·마음에 허물이 없다고 보나이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오늘날까지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게 하셨고….”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장면이다.
수세란 안거를 성만한다는 것인데, 안거를 마칠 즈음 대중들에게 허물을 묻는 포살을 하여야 비로소 안거의 햇수가 더해진다. 경전을 통해서 우리는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허물을 지적해달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자정自淨이다. 최근 잇따라 신문과 라디오와 TV, 인터넷 언론매체를 통해 고발된 내용들을 접하며, 불자라면 누구든, 우리 스스로 맑히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때론 가까운 이들과 차를 나누면서도 자정을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삼았을 것이다.
11년 만이다. 94년 당시 의현 총무원장의 전횡과 부패를 몰아내고 개혁의 기치를 세웠던 때로부터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지나왔다. 94년의 개혁은 많은 것을 이뤄냈다. 전횡의 수단이었던 본사주지 인사권은 사실상 교구의 것이 되었다. 교육원과 포교원이 별원으로 독립되어 종단의 백년대계와 불법 홍포의 기틀이 세워졌다. 특히 승가교육이 체계화되어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침으로써 비로소 구족계를 수지하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재정 상태가 양호한 사찰을 총무원의 직할 또는 직영으로 지정해 운영토록 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이다.
그러나 개혁 역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자정이 얘기되는 것 자체가 개혁의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굽이치던 개혁의 물줄기는 98, 99년 종단사태라는 고비를 넘기면서 10년을 흘러왔다. 그리고 어느덧 에너지를 소진했고, 그 흐름을 멈추었다. 흐름을 멈춘 물은 부영양화富營養化하여 독소를 내뿜는다.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오른다. 오염원을 차단하고 깨끗한 물을 채우지 않으면 물은 생명을 품을 수 없다.
지금 자정은 우리 불교계의 과제로 닥쳐왔다. 최근의 몇 가지 사건과 의혹은 자정의 시급성을 일깨우는 신호들이다. 국고보조금 횡령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1년 당시 범어사 재무스님이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공사 금액을 부풀려 국고보조금을 가로챈 것은 공공기관을 기만한 것”이라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선고 이유가 불교계를 부끄럽게 했다. “불교계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실형을 선고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화엄사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더구나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주지스님은 행방을 감추었고, 검찰은 사전체포영장을 발부받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잘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도 끝까지 수행자의 그것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불국사의 불법 골프연습장 설치 문제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골프연습장의 넓이가 40평 정도 된다고 하는데, 운동장처럼 넓어도 문제이고, 손바닥만한 크기여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신고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는 관련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자책은 때늦은 탄식이다. 사판의 소임을 살고 있어도 명색이 출가수행자인데, 골프에 탐닉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보기에 민망할 따름이다. “건강을 위해 골프를 치는데 무엇이 문제냐”, “골프가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할 변명이다.
골프는 아직도 호화 스포츠로 분류된다. 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적어도 20만원은 든다. 골프장 회원권은 2~4억원, 서울시내의 고급 아파트 한 채 값에 버금가는 거액이다. 중생들의 고달픈 처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건강과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삼가는 것이 수행자의 처신이다.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공사와 관련해서는, 지명입찰 방식을 채택하고서도 입찰통보를 한 곳의 주소와 특정인에게만 함으로써 특정 업체를 시공사로 선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 시공사와 4개의 계약서를 작성해 탈세를 지원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공사비를 과다 계산했다는 의문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사 선수금(18억8천여만원)을 계약서와 달리 통장으로 입금하지 않고 직접 전달했는데, 그 이유도 석연치 않다. 총무원의 자체 조사가 있었지만,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급기야 검찰에게 우리의 치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지난 3월 31일 취임 2주년에 즈음해 발표한 담화문에서 “종교는 그 사회 도덕성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승가는 계율정신과 무소유의 원칙이 수천년 동안 생명처럼 지켜져 왔던 인류양심의 상징입니다”라고 말했다. 박수로 화답하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잇따라 터져나오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고, 불미스런 사건에 대해 추상같은 조치가 보이지 않으니 박수치기가 주저된다.
먹구름처럼 떠도는 사건과 의혹들은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풀잎처럼 간들거리지만, 오래 된 고질병이며, 만연된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문제들을 지혜롭게, 자정을 이뤄내고 우리 불교의 본래면목을 되찾을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깜깜한 칠흑에 휩싸이고 만다.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허물을 물었다. 지금 우리의 허물이 태산 같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는 가운데 고질병은 여기저기서, 옷 속에 감춰둔 송곳이 튀어나오듯 도지고 있다.
물론 우리 종단의 출가수행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책임과 권한을 지닌 고위소임자들의 행태이다. 그러나 숭고한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에서 한 사람이 짓는 허물은 모두의 것일 수밖에 없다. 경책하고 이끌어야 할 의무를 구성원들이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가공동체인 것이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 거품 같은 이 몸을 가리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성철 스님이 후학들에게 당부한 말씀에 따라 사는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이들의 삶이 ‘더러운 것’들로 가려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감각을 되살려내고, 공동체의 윤리를 회복하는 일은 남의 몫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