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리버사이드에 갔었다. 리버사이드는 우리가 미국에 와서 처음 살았던 곳으로 여러 가지 추억이 많다. LA에서 동쪽 내륙으로 6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캘리포니아 사우스 베이 지역의 인랜드 지역으로 여름이면 걸어 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덥고 산은 사철 민둥산으로 어찌 보면 볼품 없는 사막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은 이러한 자연조건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카운티 중의 한 곳이다. 1870년부터 오렌지 종자나무 두 그루를 들여와 풍토에 맞게 개량하여 캘리포니아에서 최초로 오렌지 농장으로 만들어 가면서 발전하였다. 그래서인지 리버사이드에는 오렌지 밭과 미처 따지 못한 오렌지가 밭 사이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그렇게 드물지 않는 일이다.
리버사이드 메그놀리아 길가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처음 들여온 오렌지 나무 종자가 보존되어 있다. 메그놀리아 길은 비록 한적한 거리이지만 곳곳에는 아주 오래된 보존 건물들이 눈에 띈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 오렌지 나무를 심어 농장으로 만든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불모의 땅에서 황금의 열매를 맺는 오렌지 나무도 경이롭다.
매년 5월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오렌지 축제 때에는 도시 전체가 들썩거린다. 축제는 다운타운 한가운데서 열리며 각종 퍼레이드와 쇼 등은 볼만하다. 이곳 저곳에 임시 상점이 열리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된다. 오렌지 축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참가자 전원에게 오렌지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이벤트인 것 같다. 비록 가게에서 얼마든지 싸게 사 먹을 수 있지만 축제 때 받는 오렌지는 즐거움과 그 의미가 더해져 더욱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작고 대도시에서 먼 이곳이 일찍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더군다나 이곳이 도산 안창호 선생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모를 것이다. 다운타운 메인 거리에는 도산 선생의 동상이 조성되어 있어 처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도산 선생의 전기를 읽어봐도 리버사이드 시와의 관계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 아마도 이 도시와의 인연은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도산 선생은 1904년 3월에 리버사이드로 옮겨온 이후 오렌지 농장 ‘알타 크레스타’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당시 리버사이드의 오렌지 농장은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었던 때라 한국사람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의 한국 근로자는 50여 명으로 도산 선생은 이들을 통솔하여 한인 노동자 조합을 만들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한국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비록 미국의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는 일이지만 오렌지 수확이 많을수록 인부들이 수입이 좋아지고 한국인들이 하루빨리 정착하는 것이 독립운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리버사이드 시에서는 이 도시를 빛낸 11명의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선생을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엔젤레스 한인 사회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선생의 동상 건립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는 LA 시내에서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10번과 110번 프리웨이 인터체인지가 도산 안창호 기념 인터체인지로 이름이 교체되어 이곳을 지날 때마다 “Do San Ahn Chang Ho”라는 간판을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한인타운 내의 6가와 하버드 길 코너에 있는 우체국이 도산 안창호 우체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우체국 안에는 한국에서 발행되었던 선생의 기념 우표도 걸려있다. 이곳은 우리 구역의 담당 우체국으로 가끔 소포가 돌아가면 찾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또 하나 관련 사실은 남가주대학교(USC) 캠퍼스 내에는 1937년부터 1946년까지 도산 선생의 부인인 헬렌 여사와 다섯 자녀가 살았던 가옥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비록 선생은 살지 않았지만 선생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늘 모여 한인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하였고 선생이 감옥에서 돌아가시자 이곳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기념비적인 가옥을 남가주대학에서는 선생 가족들의 고증에 따라 당시 그대로 재현하여 한국학 연구센터와 도산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현재 선생의 후손들이 LA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장녀는 한인 사회를 빛낸 여성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내가 살았던 곳, 내가 다니는 우체국, 내가 지나다니는 도로 등 소홀히 보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의미 있는 곳들이다. 이국의 먼 땅이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곳들은 우리에게 늘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했으면 하는 염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