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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탈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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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종현 2005년 05월 279호
해인사 큰절의 행사를 마치고 제천으로 향했다.
평소 잘 알던 노스님께서 입적하셨단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올라가는 중이다. 시골에서 부지런히 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집 짓고 밭 가꾸시며 시골 할매들에게 침을 놔주시던 모습이 아련한데 입적하셨다니…….
이미 3일장이 끝나고 화장을 마쳐 유골을 법당에 모셔놓은 상태다.
영정사진을 보니 생전의 모습이 비쳐왔다.
얼핏 보면 총림의 방장스님같이 엄해 보이기도 하고, 촌의 할아버지같이 인자해 보이는 양면을 모두 갖춘 할아버지 스님 그대로다.
2년 전 처음 뵈었을 때 해인사 중이라고 인사를 하자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요즘 중들은 뭐든지 유리한 쪽으로 생각해. 평생 공부의 스승인 은사도 너무 쉽게 바꿔. 은사님 잘 모셔…… 우린 공부할 줄도 몰라. 젊었을 때는 선방도 좀 다녔지. 요즘 선방은 많이 변했어. 근데 지금 돌아보면 밭갈이고 씨 뿌리고 자연에 어울려 살면 그게 선인 것 같아…….”
언제나 밭과 나무와 한평생을 보낸 분이다. 황무지 땅을 개간해서 움막 짓고 밭 경작하고 여유가 있으시면 나무기둥 세워 대들보도 올리신 것이 조그마한 법당이 됐고 요사채가 되었다. 이날까지 인부 한번 데려 쓴 적이 없으신 스님이신데,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지게를 지시던 분인데 갑자기 돌아가셨을까.
새로 오신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리고서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80줄의 노스님인지라 사제에게 절을 맡기기로 하시고 보다 넓고 깨끗한 절을 물려주시려 했는지 절 마당 축대를 정리하셨다고 한다. 사제스님이 짐을 싸들고 오신 날 스님은 무척 기뻐하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젊은 스님 몇이 함께 살다가 오래 못 버티고 간 터였다.
좁은 마당이 걸리셨는지 복판의 큰 나무도 자르시고 마당도 넓혀 축대를 쌓으셨다.
다음날 입적하실 때도 어김없이 밝은 얼굴로 일을 하셨다. 절에 있는 노보살께는 당뇨에는 걷기가 좋다며 건강을 위해 산행 갔다 오라 하시고 당신은 또 그렇게 지게를 지러 나가셨다. 지게보가 양철함석으로 된 지게에 작은 돌 세 덩어리 올리시고 지고 나오시다가 그대로 책상다리를 한 채 주저앉으셨다. 지게를 지고 잠시 쉬어가는 모습같이 보였을까. 마침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인사를 하자 아무런 미동이 없으셔서 가까이 가보니 그냥 앉은 채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계셨다고……. 사제가 와서 마음이 편안하셨던지, 지게의 돌을 태산 같은 번뇌로 느끼셨던지, 스님은 평생 함께 지셨던 지게를 지고 가셨다. 평생 참선한 수좌의 좌탈입망이 여기에 비할까.
돌아가실 때도 그렇게 여여한 모습이셨단다.
법당에서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온다. 왠지 몸이 그냥 상쾌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으로 사는 것일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번쯤 뒤돌아보는 것이 나도 아직은 햇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