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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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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타 - 박재은 2005년 05월 279호
시장 좌판에서 튀김을 먹든, 헌 책방 주인에게 절판된 도서를 구하든 그 순간 나누는 한 마디 대화가 내게는 소중하다. 식견이 짧은 처자가 여기저기 글 쓰고 다니려니 얘깃거리가 딸릴 수밖에. 모자라는 소재를 찾기 위해 생활 가운데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과 지나가는 말 몇 마디 나누는 그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택시를 타고 동호대교를 건너는 십여 분 동안에 기사분과 나눴던 대화는 결혼 생활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가씨 결혼했어요?” “이제 곧 하는데요, 왜요?”로 시작되었던 대화가 결혼 생활 28년차라는 아저씨의 덕담으로 이어진 것.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기사분이 중신을 들었던 어느 부부는 결혼 칠년차에 티격태격 싸움이 크게 번져 이혼의 위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할 만큼 했다며 투우鬪牛처럼 씩씩대고 있을 무렵, 중신 섰던 이의 안타까운 심정에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부부 상담실’로 데려갔던 것. 상담실에 들어선 부부는 서너 개의 의자를 사이에 두고서 상담자 앞에 앉았고, 서로를 마주 안 봤다는데. 우선 상담자가 묻기를 “상대방의 장점을 말해보세요” 했단다. 지금 상대방 장점이 눈에 들어오느냐며 난리를 치는 두 사람에게 단점이나 기타 불만 사항은 잠시 후에 얼마든지 들어줄 터이니, 우선 장점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고 상담이 시작되었다. “이 여자가 생긴 건 이래도 밥 하나는 정말 잘해요.” “아무튼 결혼 생활 칠년 동안 내가 입 호강은 실컷 했죠.” “된장찌개, 보쌈, 김치… 그저 만드는 족족 맛있으니까.” “허긴, 변변한 화장품 하나 못 사줘 봤는데 인물도 저 정도면 못난 건 아니지.” 남편의 말이 줄줄 이어졌고 이제는 아내의 차례가 되었다. “저 인간이 그래도 생활비는 꼬박꼬박 잘 벌어 왔어요.” “도박을 하나, 여자를 아나 그저 착실한 사람이거든요.” “말버릇이 투박해서 그렇지 기실 맘 착하고 실속도 없어요.” 아내의 남편 자랑이 불붙을 때쯤, 이미 두 부부는 나란히 붙어앉아 손을 잡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살면서 한 번도 서로에게 칭찬이나 애정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며 미안해 하더라는 것.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상대방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자만이 앞섰던 칠년의 생활 후에 처음으로 서로의 재발견을 했던 셈이다.

칭찬 때문에 시작된 요리 한 접시
학창 시절, 하나뿐인 남동생과 나는 자취를 했었다. 엄마의 어깨 너머로 어느 정도의 요리를 익혀왔던 나는 취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남동생이었다. 동생은 패스트푸드를 싫어하는데다가 밥도 할 줄을 모르는 ‘조선 남자’이다 보니 풍채(?)가 좋던 그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여위기 시작했던 것. 주말마다 내 집으로 밥 먹으러 찾아오는 동생 때문에 나는 때 아닌 요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삼계탕이나 제육볶음은 재료비가 드는 별식으로, 그 외에는 떡볶이나 볶음밥 같은 간단식으로 동생을 챙겼었다. 엄마 밥에 굶주렸던 동생이 엄지손을 치켜세우며 “누나 떡볶이가 진짜 최고다, 엄마 꺼보다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구” 하면서 칭찬을 할 때면 어찌나 으쓱해 지던지.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취생활 9년 중에 동생을 챙겼던 일이년의 추억들이 나를 요리사로 만든 원동력이었을 듯싶다. 동생의 밥을 챙기다 보니 이놈 자식이 줄줄이 친구들을 데려와서 졸지에 ‘요리 잘하는 누나’로 불리기도 했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쿠키를 굽고 찜 요리에 도전해보고 하면서 어느새 나의 길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방학 때 집에 와서는 그간 솜씨가 붙은 새 요리들을 만들고, 엄마 친구 분들을 초대해 시식을 시켜드리거나 하면서 ‘공명심’에 휘둘린 초짜 요리사 흉내도 종종 냈었다.
아마도 그때 남동생이 내 음식을 시큰둥하게 먹었더라면, ‘누나 떡볶이’먹고 싶어서 일주일을 참았다고 호들갑떨지 않았더라면, “재은이가 요리를 좀 하니까 재상이 걱정을 덜어요, 내가”라며 엄마가 자식 자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요리사가 안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지인들이 내게 언어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더 했더라면 언어학자가, 노래만 불러도 먹고 살겠다며 추켜줬으면 가수 지망생이 되지 않았을까 말이다.
칭찬은 습관이다. 애정 표현이 멋쩍은 우리 문화에서는 쉽지 않은 일 일 수 있으나,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동료 사이에 선후배 사이에 칭찬 한마디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칭찬을 하는 데는 돈이 들지도 시간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그저 말 한마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