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환경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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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04월 278호
10여 년 전 시인 김지하는 ‘중심의 괴로움’이란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는 깊고 넓은 울림이 있다.
“봄에/가만 보니/꽃대가 흔들린다//흙밑으로부터/밀고 올라오던 치열한/중심의 힘//꽃피어/퍼지려/사방으로 흩어지려//괴롭다/흔들린다//나도 흔들린다//내일/시골 가/가/비우리라/비우리라.”
널리 알려진 대로 시인 김지하의 삶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게 예사로운 일인가. 가장 혹독했던 때에 가장 중심에 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죽음으로써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중심의 괴로움을 말하면서 비우리라고 노래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환경활동에 있어서 불교는 중심에 서 있다. 역사는 거대한 것이어서 개인이나 한 집단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연은 결코 아니다. 뚫지 않고, 허물어뜨리지 않고는 좌불안석인 것으로 생각하는 개발일변도의 정책이 원인이다. 그것은 물류비 절감, 경쟁력 제고, 경기 부양이란 이름으로 깊은 산중으로 닥쳐온다.
길이 없었던 게 아니다. 굽은 길을 펴면 되는 것을 굳이 산을 뚫고, 물길을 막아 일직선으로 낸다. 요즘의 도로는 언덕이 없다. 낮은 곳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교각을 세우며, 높은 곳은 터널로 뚫어버린다. 이러니 깊은 산중도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 절이 있건 바위가 있건 안중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민원인이 적고, 보상비 또한 적으니 설계단계에서부터 산중이 도로 건설의 적지가 되는 셈이다. 불교의 환경활동이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의 하나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반대운동의 한가운데 불교가 있었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반대운동에도 불교는 중심에 있었다. 그 이름은 수경 스님, 회룡사, 불교환경연대, 지율 스님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명산대찰을 지키는 호법신장이 되라”는 조계종 원로회의의 특별유시가 있었으며,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연합회의 관통 반대 결의가 있었다. 사부대중의 동참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불교였다.
패배는 아니었다. 애초 이김과 짐의 이분법이 아니다. 불교환경활동의 목표는 이김이 아니다. 정책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국립공원의 가치, 수행의 가치를 반영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교환경활동의 일관된 지향이다. 이러할 때 막개발이니 무분별한 개발이니 이런 구태가 해소되는 것이다.
왜 환경인가,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불교는 중심에 있으므로 묻고 답해야 한다. 중생이 잘 살기 위해서다. 무엇을 위한 물류비 절감이며, 경쟁력 제고이며, 경기 부양인가. 지난 30여 년 동안 정부는 이 같은 구호를 외쳐댔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30여 년 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었으니, 물류비는 엄청나게 절감되었을 것이며, 경쟁력도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은 힘들고 괴롭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 조화로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상생이 빠졌기 때문이다.
불교 인식론의 핵심은 연기緣起이다. 다른 말로 하면, 조화이며 상생이다. 사회과학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라면,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의 규명이다. 불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한다. 따라서 불교는 환경의 종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교가 환경활동의 중심이 되는 것은 개발에 따른 외적 요인과 함께 불교의 가르침에 중심으로의 요소가 담겨 있다. 몇 스님의 활동이 특이한 현상이 아니며, 특이한 현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 동안은 불교가 애써 환경을 외면해왔을 뿐이다.
몇 년 전 조계종총무원 사회부에서 펴낸 ‘사찰환경 침해 사례집’에 보면, 10여 년 동안 100곳이 넘는 사찰이 수행환경 침해로 고통을 겪었다. 불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수행과 포교를 뒤로 하고 스님들이 거리에 나섰으며, 신도들도 기도를 멈추고 수행환경 수호에 나섰다. 이런 중에 수행환경을 지키는 활동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절집 내부의 개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상의 조성,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건축불사가 한창이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법당 앞까지 닦아놓고서 수행환경을 지키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목소리였다. 이런 비판이 모두 맞지는 않다. 6·25 전쟁으로 불에 탄 가람의 원형을 복원하는 불사도 있었으며, 수행과 신행 공간의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불사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는 경쟁하듯 거대화로 치달았으며, 사찰 재정 마련의 한 방편으로 건축불사가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불사를 통해서 불사를 추진하는 주체들이 어떤 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제일 주된 목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불사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예산 이상의 잉여를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사유화하든지 안 그러면 예산 속에서라도 끄집어내가지고 자기가 사적으로 그것을 활용을 하든지, 대개 이런 것들이 불사 추진하는데 많이 섞여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흥선 스님, ‘불사, 무엇이 문제인가’, 2004. 12. 26. 해인총림 및 교구발전 4차 토론회 발표문) 이쯤 되면 가르침과 행동은 겉돈다. 그리하여 지금 불교는 환경활동만 놓고 본다면, 중심과 이탈의 두 개의 상반된 모습이 뒤섞여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종교의 권위 또는 호소력은 가르침과 행의 일치에서 나온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리의 수승함은 외면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 불교가 외형적으로는 태산보다 거대한들 사상누각처럼 위태롭다.
본래면목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 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겠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 거품 같은 이 몸을 가리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성철 스님께서 후학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다. 표현은 달리 했을지라도 선조사님들의 말씀이 이와 같았으니,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뒷사람이 어지러울까 눈길도 흩트리지 않았던 그 길을 가지 않고 쉬운 길을 찾는 것은 아닌지….
‘중심’은 원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좌표가 아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켜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들어섰다. 그 큰 무게를 감당할 일이 남았다. 먼저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는 것이 큰 무게를 짊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