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비 오는 날 가섭 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해인사의 크고 작은 암자 중 큰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 용탑선원이다. 거리가 멀면 일부러라도 찾게 되는데 비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나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발길을 못하고 있었다. 등산로 방향으로 가는 길. 초입의 이정표와 함께 전각이 보인다. 가야산 정상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계곡을 이루고 용탑선원 앞에 이르러서는 제법 큰 물줄기를 만든다. 봄기운이 완연해서인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소리처럼 크다. 물을 따라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니 바위가 끊어지는 곳에 물이 모여 작은 소를 만들어놓았다. 맑은 날씨에 물빛도 하늘을 닮아 청명하다. 하늘빛 물 속에 흰 구름이 흐른다. 솜사탕 같은 구름을 먹으며 자라나는 물고기들이 한가롭다. 발을 담그기엔 이르지만 탁족 흉내라도 낼 요량으로 손을 담그니 눈 녹은 물처럼 차기만 하다. 성급한 마음을 접고 따뜻하게 데워진 바위에 앉는다. 이렇게 앉으니 물 흐르는 소리가 더욱 힘차게 들린다. 바위가 굴렀을 법한 선원 앞의 개울엔 유연한 물줄기가 제법 큰 소리로 구른다. 여름이 되면 더욱 불어난 개울물을 만날 것이다.
하마비가 세워진 외나무다리 앞에 선다. 나라님도 말에서 내려야 했다던 곳엔 이제 비석만이 서 있다. 말에서 내리라는 뜻은 겸손하게 들어오라는 뜻이니 오늘에도 하마비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나무의 몸통 중간을 통째로 잘라서 뉘여놓은 외나무다리. 그리 넓지 않고 깊지도 않은 개울에 놓였건만 다리를 건너다 중간쯤에서 멈추어 보니, 내려다보이는 개울이 깊게만 느껴진다. 대문이 따로 없는 담장을 지나 마당엘 들어선다. 인기척 없는 마당엔 바람만이 지나고, 석탑 앞 돌사자들이 봄볕을 쬐고 앉아 있다. 한가하기 그지없는 선원 마당엔 흙 밟는 소리만 돌아다닌다.
달이 뜨는 시간에도 빛은 없고 어둠이 계속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이따금씩 휘어져 들어오는 빗줄기가 얼굴에 닿는다. 소리에 민감해지는 밤, 빗소리와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창호지를 뚫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용탑선원은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시간과 관계없이 소리가 흐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물처럼 내리는 비처럼, 자연스럽고 숨김없는 소리를 내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마당을 걸어도 소리가 나는 법인데, 무엇을 숨길 수 있을 것인가? ‘신독愼獨’의 마음으로 걷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