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완전한 회복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일도 할 수 있고 나다닐 수도 있어 이만하면 됐다 싶어 해인사로 입산한 것이 작년 12월 1일이다. 글을 쓰는 지금 3개월 반 정도가 지났다. 삼천배와 삭발을 거쳐 처음 내가 맡게 된 소임은 채공 보조. 한마디로 상 차리는 소임이지만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사실 모든 소임이 그러하지만).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뛰어다녀도 언제나 실수투성이다. 상행자들로부터 제대로 못하느냐는 경책이 쏟아지고 때로는 몇 백배씩 참회도 주어진다. 그리고 새벽 2시40분부터 저녁 9시까지 빡빡하게 소임과 운력으로 돌아가는 일과는 몸의 피로를 누적시킨다. 그래서 해인사 행자들의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의 게이지는 언제나 풀(full)이다.
나도 회복이 덜 되어 무리가 되었던지 발목이 부어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절게 되고, 그 절뚝거림이 점점 심해졌다. 첫 2개월간은 그렇게 아픈 다리를 절면서 소임을 봤다. 스님들 보기에 안 좋으니 다리를 절지 마라는 말에는 서러움이 왈칵 밀려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맘이 왔다갔다한다. 퇴굴심, 속퇴의 유혹이 머리를 들이대며 이런저런 계산을 하게 한다. 암자로 가면 편하다던데, 괜히 힘든 해인사로 왔나, 이러다가 완전히 몸이 망가지는게 아닐까, 속퇴해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다시 들어오는게 낫지 않을까 등등….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팔을 잘라 도를 구하신 혜가 스님. 가리왕이 팔다리를 자를 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기에 노여워하지 않으셨다는 금강경의 한 구절. 그에 비하면 나는 조족지혈의 비교대상조차 아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 약해진 마음을 돌이키게 한 것은, “큰스님 되거래이” 이 한 마디와 함께 몸 시원찮은 막내아들을 떠나보내며 지으시던 칠순 노모의 눈물. ‘마음 속 애정을 여읨이 사문이요, 세속을 연연치 않는 것이 출가’라 하는 자경문의 말이 있지만, 출가 후 비록 짧은 몇 개월의 시간이나마 내게 가장 든든한 보루가 되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신심도 구도열도 아닌 내 어머니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보은의 결의이다. 출가한 입장에서 보자면 언젠가는 버려야 할 심회心懷이다. 그러나 그 언젠가가 되기 전까지는 내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그리고 비틀거리는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줄 지팡이가 되지 않을까.
좌차, 기강, 규율
해인사로 출가해서 가장 놀란(한편으로는 두려웠던) 것은 군대를 방불케 하는 행자실 내의 위계와 규율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는 그 이상이었다. 입산한 날짜를 기준으로 좌차를 따져 엄격하게 상행자와 하행자로 구분되고 그 상하의 수직관계 속에서 엄격한 기강과 규율이 적용된다. 해인사로 출가한 사람들이 ‘속복俗服’이라고 불리는 대기기간 동안 속퇴를 생각하게 되는 최초최대의 갈등요인은 이런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일 것이다. 나도 초기 얼마 동안은 ‘이건 좀 아니다. 난 입산한 것이지, 입대한 것이 아니다!’라는 거부감이 심하게 들었다. 상행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초심자들이 적응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래도 나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예비승려로서의 몸가짐을 익히고 해인총림이라는 대승가집단의 기층부를 담당하고 있는 행자실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또 그것이 해인사만이 가지는 가풍일 수도 있을 것이고….
물론 그렇게 날이 선 일사불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무형, 정신적·물질적으로 낭비되는 요소도 있다. 또 규율과 기강을 빙자해, 혹은 규율과 기강의 사각지대에서 자신의 편익을 도모하고 작은 일탈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또 그런 경직된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외부에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조직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규율과 기강과 체계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풍과 멋은 지키되 인습과 폐단은 버리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이 요구되는 부분인 것 같다.
모순, 실망들…
행자생활을 하면서 두 번째로 느끼는 실망 내지는 갈등의 요인은 아마 상행자들의 언행일 것이다. 솔선수범하며 하행자를 이끄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입바른 소리를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하행자의 입장에서 겉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 실망하고 화도 내고, 때로는 비웃기도 하며 때로는 무시하게 된다. 그 언행들로 인해 나에게 직접적 피해가 오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언행의 불일치, 표리부동. 그런 모순적인 모습들에, 내가 과연 저들과 수행자라는 이름의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또 반복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깨치기 이전에는 그들도 중생이고 나도 중생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내 안의 갈등은 내가 규정해놓은 수행자라는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상相이 빚어낸 마장(혹은 결벽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 나와 그들 모두 숙세의 업과 습을 이 불완전한 사대육신에 지고 부처로 나아가는 도정에 놓여 있을 뿐. 그들이 나보다 먼저 출가했다고 해서 조금 더 수행자답고 부처에 가까워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묻고 있는 나는 결백한가? 결코 아니다. 서로가 오십보 백보인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는 교사, 때로는 반면교사가 되는 것일 것이다. 내가 승가의 대중생활을 하는 한(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마음은 항상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닦을 것이 있음으로 해서 수행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 번 기원한다. 내일은 자타일시진일보自他一時進一步할 수 있도록….
하심
자기를 낮추는 마음. 불처럼 솟구치는 자신의 아상을 꺾는 마음. 끊임없이 인욕하는 마음. 행자들이 갖춰야 할 제1의 덕목이다. 그래서 행자실 불단 중앙에는 부처님 사진과 함께 ‘하심下心’이라고 한문으로 씌어진 액자가 걸려 있다. 이 글씨는 저 멀리 행자를 보고도 먼저 합장하셨다는 일화와 함께 ‘하심제일下心第一’이라는 별칭을 가지신 지월 스님이 쓰셨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행자들에게 있어 이 하심이 요구되는 가장 일반적인 상황은 상행자 혹은 스님들에게서 지시를 받거나 경책을 받을 때이다. 설사 그것이 부당한 지시나 억울한 꾸지람이라도 절대 복종하고 순응해야 한다. 속에서 뭣 같은 것이 솟구쳐 올라도 참아야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하인심下人心 내지는 비굴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처음 하는 하심은 하인심이고 비굴심이다. 상하의 위계에 묶여 마지못해 순응하는 하인심이고, 거역하면 내게 돌아올 피해가 두려워 내 자존심을 꺾는 비굴심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묘한 것이 이 겉모양만의 하심이지만, 그것도 자꾸 연습할수록 어느새 내 속의 모질고 뾰족한 부분들이 깎여 나가고 마음이 조금씩 순해지고 선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는 것이다. ‘옛날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나쁜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혹은 ‘이런 류의 상대는 내가 이렇게 모질게 대했었는데…’ 하며 조금씩 바뀌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문득 놀라며 대견해 하기도 한다. 나를 낮추고 참아가는 연습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금씩 진정한 하심으로 변해가는 모양이다. 노자도 밑으로만 밑으로만 흐르는 물의 덕을 찬양했다. 물은 낮게 흐름으로 인해 결국 대해를 이룬다. 하심하는 공덕은 나를 넓게 하고 깊게 한다.
그래도 진심으로 하심하는 것이 안 되는 때가 아직은 더 많다. 어느 순간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서 불쑥 화를 내며 상대를 염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참 어렵다. 그래도 하심은 못할지언정 최소한, 겉으로만 “예 예” 하며 속으로 이빨을 감추고 발톱을 숨기며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악심을 품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다시 발심과 다짐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란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발심은 매일 하는 것’이라고…. 한번 결연한 의지로 발심하였다고 해서 그 발심이 평생을 가느냐? 결코 아닌 것 같다. 공양의 수를 더해갈수록, 절집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날로 안일의 타성과 해태심은 커갈 것이다. 또한 자신을 하루하루 다잡아가지 않는 한, 종내는 수행자도 그 뭣도 아닌 쓸모없는 무위도식배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발심의 계기가 어떤 것이 되었든, 또 출가 후 몇 년이 지났든, 지금 막 출가한 듯 매일매일 혹은 순간순간을 발심하는 것. 이것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행자생활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개월 수를 채우고, 계 받을 날이 가까워진다고 마치 군대의 말년 병장이 된 듯 생활한다면 그게 자신의 수행에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나는 오히려 사미계, 비구계를 받은 후의 본격적인 배움과 수행의 시기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닦아갈 수 있는 때가 행자생활을 하는 바로 이때가 아닌가 싶다. 어른 스님들 말씀에 행자생활 동안 평생을 먹고 살 복전福田을 짓는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스님들을 시봉하는 육신의 과보로 받는 유형의 복전만이 아니라, 앞으로 수행의 씨앗을 심고 불과佛果를 이룰 마음의 밭을 일구는 그 복전까지를 말씀하시는 것일 것이다. 씨 뿌릴 시기가 가까워졌다고 밭 갈기를 소홀히 할 것인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입은 은혜가 하늘 같고 바다 같은데 내가 쌓은 공덕은 일천하고 내가 일군 복전은 척박하다. 불은佛恩과 시은施恩, 속가의 부모와 형제자매들, 나아가 스님들과 도반들의 은혜까지… 이 큰 은혜를 언제 다 갚을지… 행자생활 열심히 하고 스님 되어 열심히 닦아, 작은 그릇이나마 세상에 이익되게 쓰여지기를 이 글로써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