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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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일관/조계종교육원 부원장
2005년 04월 278호
출가出家는 산스크리트어로는 ‘pra+vrajya’라 하여 가정생활을 떠나 나오는 초출탈리超出脫離를 의미한다. 줄여서 출리出離라고도 하며 미혹한 세계를 여의고(離)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나오는(出) 것을 말한다. pra는 ‘앞으로’ vrajya는 ‘간다’는 뜻이 모아져서, 집을 떠나 고행하고 걸식으로 유행遊行하며 마음을 오롯하게 하여 사문의 깨끗한 행을 닦는다는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한다. 《경덕전등록》에 ‘존자가 묻기를 너는 몸(身)이 집에서 나왔는가(出家)? 마음(心)이 집에서 나왔는가(出家)?’라고 하자, ‘내(我)가 집에서 나왔지 몸과 마음이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몸과 마음이 아니라면 누가 출가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또 《화엄경》에는 ‘있던 집을 버릴 때에는 마땅히 원하기를 모든 중생이 출가하여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지이다’라고 하는 원願이 있다. 비록 몸이 집을 떠나 출가하였지만 몸이란 모습만이 집을 떠난 것은 진정한 출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모든 주위의 환경을 탐하고 그것에 물들지 않으면 이것이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 진정한 출가라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출가(心出家)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하는 것인가?
‘귀명歸命’이라는 두 글자의 풀이에서 잘 알 수 있다. 아침, 저녁으로 올리는 예불은 물론 경전과 논서의 처음도 이 귀명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귀명을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분이 원효 스님이다. 원효 스님은 귀歸의 모습을 공손히 따르는 것이며,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귀歸의 뜻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명命은 목숨의 뿌리이며, 모든 근根을 통제함으로 하나뿐인 몸에서 가장 중요하므로 주인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 가운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 하나뿐인 목숨으로 위없는 존귀한 이를 받드는 것이다. 믿음의 지극함을 나타내어 목숨을 바쳐 귀의한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출가자의 바른 행을 살펴보자.
한국불교에서는 행의 이상형을 보현보살의 행行에 두고 있다. 출가한 사문의 깨끗한 행은 보현보살의 마음과 원행願行으로서 중생을 구제하는 실천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맹세하고 스스로에게 구하기를 이 세간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계戒를 받들고 원願을 행한다고 한 것이다. 비록 조계종이 참선을 강조하며 선종을 표방하고 있지만 종지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교육원의 교육목표도 마찬가지이다. 자각각타自覺覺他라는 실천의 내용은 중생구제를 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戒는 경계하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불교에서 사용하는 실라(sila)는 일반적으로 ‘~을 익힌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두 내용이 서로 상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증일아함경增一阿含》에 보이는 칠불통계七佛通戒에 의하면 다른 뜻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악을 짖지 말며(諸惡莫作),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여(諸善奉行),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면(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라는 구절이다. 악을 경계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며, 선을 행하는 것은 악을 경계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러한 뜻을 바르게 할 줄 아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단에서는 엄격한 규정과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참다운 승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비록 위와 같은 뜻이 있지만 출가는 현실도피성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초기교단은 물론 대승교단도 가정과 가지고 있던 직업을 떠나 출세간에 머무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 그리고 하루 한끼의 식사는 걸식乞食으로, 발우 한 개와 세 가지 누더기 옷은 분소의糞掃衣로, 아란야라 불리는 수하주樹下住에서, 진기약陳棄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이른바 사의지四依止로 네 가지에 의지하여 생활한다는 것이다. 출가자의 생활방식이 이렇다보니 삶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러한 이해는 출가의 의미를 극단적인 자기수행으로 밀어넣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라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를 해체한 지혜를 통하여 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의 길로서 아란야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 걸식에 의한 재가자의 보시와 이에 상응하는 법의 실천으로써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실천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실천은 승가를 통하여 이루도록 배려되어져 있다.
승가는 화합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도선 국사는 승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이화理和이고 다른 하나는 사화事和이다. 이화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뜻을 따라 좇는 것으로 열반과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사화는 6종류의 화합을 말한다. 계(戒)로 화합하여 함께 수행하는 것이며, 지견(見)을 화합하여 함께 아는 것이며, 몸(身)을 화합하여 함께 머무르는 것이다. 또 이로움(利)을 화합하여 함께 고르게 하는 것이며, 입(口)을 화합하여 다툼이 없는 것이며, 뜻(意)을 화합하여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는 수행에 의한 해탈이 아니라 공동체의 화합을 통한 해탈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승가의 공동체가 개인의 수행과 하나가 되어 승가와 내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회 실천이며 승가는 그 밑거름이 된다.
결국 출가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해탈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해탈을 함께 추구하여야 한다. 비록 집을 떠나는 것을 출가라고 하였지만 몸만이 떠난 것을 출가라고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출가한 진출가를 이룸으로써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목숨(命)을 믿음으로써 가장 귀한 이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소욕지족의 마음에서 얻은 지혜의 법을 사회의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출가의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함께 하며 서로 도와주는 것이 승가의 존재이며 승가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