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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 앉아 꾀꼬리 소리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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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5년 04월 278호
육조 혜능慧能 선사는 바람이 아닌 마음이 움직인다고 했으나, 동쪽에서부터 실어오는 봄바람은 뭇 생명의 몸과 마음을 한참이나 움직이고 또 움직여놓는다.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 봄은 바람이 흔들림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계절이니, 그 봄바람에 한 자락 설레는 마음이 어디 사람뿐일까.
제비는 그 봄바람에 몸을 싣고 북으로 강을 건너가 어느 집 처마 밑에 일가一家를 이루고, 꾀꼬리도 바람에 묻어나는 훈기에 노란옷으로 갈아입고 목청을 틔운다. 초목들은 저마다 생명을 더하기 위해 화려한 치장으로 혼인의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저마다 벌 나비 청하기에 바쁘니 이 봄날 각 생명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부산스럽다. 생명을 잇는 이 소리 없는 아우성에도 사람은 마음과 귀가 어두워 아직도 추위 속인가 하여 진정한 봄은 아직도 한참이나 있어야 오려는가보다.

펄펄 나는 저 꾀고리 翩翩黃鳥
암수 서로 정다운데 雌雄相依
외로운 이내 몸은 念我之獨
뉘와 함께 돌아갈꼬 誰其與歸

고구려의 유리왕은 이때 암수 꾀꼬리의 정다운 모습을 보고 한없이 부러움과 회한에 가득 찼건만 탁한 세상이 된 지금 봄이 되도 그 새의 노란옷을 볼 수 없고, 맑은 목소리는 더더구나 쉽지 않다. 그저 그를 마음에만 두고 어디 그림에서나 반가워할 일.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마상청앵馬上聽鶯은 소리를 담은 그림이다.
말 위에 몸을 실은 선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시선을 올린다. 낭창한 버드나무 가지 위에 노란 꾀꼬리가 무심하게 노래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묘미는 그림을 보는 사람이 곧 말 위의 인물이 된다는 점이다. 선비의 시선 위에 내 시선을 얹고, 그의 귀를 빌려 그 소리를 듣게 되면 곧 우리는 봄날 나른한 길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수양버들 나뭇가지 위의 꾀꼬리도 말 위에 앉은 선비도 화가에게는 무심한 대상이었던 것처럼 단순하고 무덤덤하게 표현해내었으나,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통해 화면 가득 꾀꼬리의 청아한 소리를 담아내었다. 만약 꾀꼬리의 화려한 깃을 일일이 그려내었다면 아름다운 새소리는 온데간데없었을 것이다. 시각을 단념시키니 청각이 살아온다.
마치 처마 끝에 풍경소리가 달려 있는 것과 같이 수양버들 가지 사이에 꾀꼬리의 노래가 조로롱이 묻어 있는 것이다. 순간 주변은 침묵하고 온 우주에 선비와 새만 남아 있다. 그들 사이는 맑은 새소리로 채워진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른 것들의 간섭이 배제되는 순간, 그 새와 선비를 둘(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김홍도는 그림으로써는 그가 살았던 시기 때와 지금까지의 화단을 통틀어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름이 홍도弘道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도가道家와 불가佛家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 여러 점 전해 내려온다. 용주사 대웅전의 후불화도 그의 작품이라고 하니 불가와는 어쩔 수 없이 인연이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싶다. 마상청앵은 여백으로 이미 그 뜻을 다 보이고 여백 가득한 새소리와 풍성한 봄볕 드러내었으니, 침묵으로 뜻을 전하는 선미禪味가 있다.

왕상시가 어느 날 임제 스님을 방문하였다. 임제 스님과 함께 승당 앞에서 만나 인사하고 질문했다. “여기의 스님들은 경전을 봅니까?” 임제 스님이 대답했다. “경전을 보지 않습니다.”
왕상시가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좌선을 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길, “좌선도 하지 않습니다.”
왕상시가 또다시 질문했다. “경전도 보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면 도대체 스님들은 무엇을 합니까?” 임제 스님이 말했다. “모두 그들에게 부처가 되도록 하고 조사가 되도록 합니다.”
왕상시가 다시 질문했다.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병이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임제 스님이 대답하였다. “그대를 한낱 속인으로 여겼는데, 이제 보니 제법 안목을 갖춘 사람이군!”

훗날 《조당집祖堂集》 설봉장雪峰章에는 비슷한 이야기로 예전부터 여러 노숙들이 속가의 관원들을 인도하여 승당을 돌면서 말하기를 “여기에 있는 2~3백의 대중들은 모두가 불법을 배우는 선사들입니다”라고 하니 관원이 말하기를 “금부스러기가 비록 중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고 하니 이를 어찌 생각하십니까?”라고 말하자 대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설봉 선사가 제시하면서 경청鏡淸에게 질문하였다. 이에 경청은 “요즈음은 벽돌을 던져서 옥을 얻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하였다.

시경詩經에는 저 화려한 꾀꼬리여, 언덕 귀퉁이에 머무는구나(緡蠻黃鳥 止于丘隅) 하였으나, 공자께선 이를 두고 머묾에 그 머무는 바를 아는 것이니 가히 사람으로서 어찌 새만도 못하단 말이냐(子曰 於止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고 탄식했다는 구절이 대학大學에 전한다. 또 스승께서는 여기에 덧붙이길 흑백의 제비는 처마 밑에 머물러 그 머무는 바를 아는 것이니 어찌 사람이 새보다 못하단 말인가 하시며, 제비도 꾀꼬리와 같이 착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셨다. 이들의 탄식이 어찌된 것인지 새겨보고 또 새겨볼 일이다. 혹 벽돌을 던져 옥돌을 얻을 수 있을지 또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