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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데이(Martin Luther King Jr. Day) 퍼레이드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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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5년 02월 276호
을유년 새해, LA 지역은 약 2주일 동안의 폭우로 잦은 정전과 평소보다 3배에 달하는 교통사고 그리고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와 함께 시작되었다. 1966년 이래 최대의 강우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신문의 칼럼에서는 이번 폭우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쯔나미와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LA에서는 의미있는 불교 강좌가 열렸다. 전북대학교 강건기 교수가 LA 고려사에서 ‘불교와 참마음’이라는 주제로 8일간의 긴 강의를 했다. 추운 날씨와 연일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매일 8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하였고 그 분위기는 대학 강의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였다. 주목할 점은 평소 절에 나오시는 분들보다는 중장년층의 남자분들이 의외로 많이 참석하였고 그 중에는 8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셨다. 모두들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강의를 듣고 다시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중간에 일어서지 않고 꼼꼼히 노트를 해가며 경청했다. 강의 후에도 평소 품고 있던 불교에 대한 의문에 대한 기탄없는 질문들도 이어졌다.
절에 있으면 심심치 않게 불교교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문의를 받는다. 그리고 은퇴를 하고 나면 불교대학이나 선방에 가시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신다. 한국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이곳 미국에서는 뭐든지 귀하게 느껴지는 터라 그분들의 불교에 대한 애정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새해와 함께 이곳 LA지역에는 대표적인 기념행사가 두 개 있었다. 1월 1일에 열리는 LA 인근 파사데나의 ‘장미 퍼레이드’와 1월 셋째 주 월요일에 열리는 ‘마틴 루터 킹 데이 기념 퍼레이드’가 그것이다. 먼저 올해의 파사데나의 장미 퍼레이드는 ‘가족의 화합과 평화’라는 주제로 갖가지 기념 꽃차가 만들어지고 이들 꽃차들이 가족의 화합과 애정을 염원하며 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퍼레이드를 하였다. 특히 꽃차 선두에는 해마다 장미 퀸 7명이 선발되어 탑승하게 되는데 올해는 한국계 여고생 한 명이 선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쓴 왕관을 한국계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였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다. 이러한 한인 커뮤니티의 일간지의 기사들은 우리 한인 사회가 이제 점점 주류사회 속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축제에 손님이 아니라 당당히 함께 주인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전하려는 것 같았다.
한편 ‘마틴 루터 킹 데이 기념 퍼레이드’는 LA 시내 에프로 어메리컨 밀집지역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열렸는데 바로 에프로 어메리컨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를 기념하는 행사이다. 비록 ‘장미 퍼레이드’만큼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시민들이 도로변을 꽉 메웠고 고교생, 대학생, 경찰관, 소방관, 쓰레기 용역업체, 각 커뮤니티의 봉사단체들, 각종 노동조합원들 등이 이 날을 맞이하여 인종의 차별을 넘어 모두 함께 다정한 이웃이 되자는 슬로건 아래 행진하였다.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킹 목사의 생일로 일년 중 미국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국가공휴일이다. 이 날은 미국 전역에서 기념 행사와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이곳 LA가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그 퍼레이드의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태어나서 1968년 4월 4일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40도 채 안 된 나이에 암살 당한 미국의 위대한 에프로 어메리컨 인권운동가이다. 한 에프로 어메리컨의 생일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할 만큼 그는 미국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인종차별과 인간평등사상을 전파한 사람이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주장하며 백인들의 폭력과 차별에 저항해온 한 젊은 목사는 이후 35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특히 그의 희망이 가득한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다. 1963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행한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에서 그는 언젠가는 우리의 자식들이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그리고 흑백이 한데 어우러져 밥을 먹기도 하고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올해의 퍼레이드는 20회로 LA 남쪽의 마틴 루터 킹 거리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3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이곳에는 약 만 명의 시민과 꽃마차 150개와 30여 개의 공연 팀이 참가하였다. 양쪽 도로를 가득 메운 에프로 어메리컨들은 꽃차와 공연 팀이 지나갈 때마다 열화와 같은 함성으로 환호하였다. 내가 자리 잡은 곳은 NBC방송이 중계를 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 앞에서 한바탕 공연을 펼치고 지나갔다. 공연을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한마음이 되어 흥겨워 보였고 모두들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도로변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에프로 어메리컨이 많았고 킹 목사의 사진이 지나갈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각 나라의 커뮤니티에서도 그 커뮤니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과 그 나라의 고유한 의상과 공연 등을 선보였다.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해서는 축구선수 홍명보 씨가 그랜드 마샬로 참여하였고 부채춤과 해동검도 팀이 나와 공연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각 커뮤니티간의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고 특히 에프로 어메리컨 커뮤니티와 우의를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킹 목사가 말한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희망이 만든 것이다”라는 말은 아직은 현실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메시지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에프로 어메리컨의 교육수준,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사실이 아직은 우리 모두가 이 날을 맞이해 한 번 더 화합을 다짐해야 할 것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한국의 장마보다 더 혹독하고 지루했던 비가 끝나고 따스한 봄날 같은 날씨로 돌아왔다. 새해에는 세계가 인종과 종교를 넘어서 인간이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해가 되길 부처님 전에 발원하며 끝나지 않은 축제를 뒤로 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허름한 주택가를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