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가지고 온 이상에는 죄 받으러 왔어. 사람의 육신은 오래 가지 못하고,
그나마 그중 이름만 남아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을 되밟게 한다.
나무나 바위보다 오래 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리로 길을 내고, 저리로 물길을 바꿔가며,
이 나무 저 바위를 옮겨다 놓는다.
사람의 이름이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나무나 바위가 어디 그런가?
구별하고 비교하고 설명하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나무와 바위에게
이름을 붙여놓은 우리.
그들보다 늦게 와서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없어지는 우리.
그래서인지 자기보다
오래 살 것 같은 바위에 이름을 깊게 새겨놓는가 보다.
1200년 된 이름을 가진 해인사에 살다간 이 얼마이고,
스쳐간 이는 또 얼마일까?
조금 전까지 있었던 것들도
눈만 감으면 사라지고 마는데,
1200년 이전에 살다간 이들을 무엇으로 알아볼까?
일을 핑계 삼아 절집 주변을
기웃거린 시간도 여러 해 되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음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얻어먹은 절밥이 아깝기만 하고,
밥을 차려 내준
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어둠 짙게 내린 창밖을 보다가
가늘게 내리는 눈발을 보았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는 눈 알갱이는
반딧불처럼 날아서 어둠으로 사라진다.
밤하늘의 별 같기도 하고,
시냇물 위에서 반짝이며
구르는 빛 구슬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이 귀한 올해,
산사에 와 눈을 보니 반갑더니
이른 아침에 쌓인 눈을 보니
더욱 기특하다.
밤사이 차가운 반딧불이
저기까지 날아가 앉았는지,
원당암 마당에서 바라보는
가야산도 눈을 덮어썼다.
저기 어느 바위 위에
나의 어리석음과 몹쓸 놈의 마음을
눈과 함께 섞어놓아,
햇빛에 녹여 없앨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몰차게 호통을 친 스님을 만나
나의 죄를 알게 되니 감사한 마음뿐!
‘죄를 짓고 찾아온 절집에서,
다시 죄를 짓고 죄만 남겨놓고 가니,
절집엔 죄만 쌓이네!
이를 어찌 해야 하나!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