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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불자護國佛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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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기성 2005년 02월 276호
오랜 기간 수도와 정진에 전념한 수행자도 아닌 범부로서 이렇게 글을 쓰고 또 덕 높으신 큰스님과 많은 불자님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어 한사코 사양하였으나, 군이라는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여러 법우님과 생각을 나누고 또 서로를 이해하고, 알게 된다면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라 생각하여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씁니다.

‘호국불자護國佛子 군인軍人으로서 가야할 길은 무엇일까?’
언제나 이른 아침 맑은 새소리에 깨어 일어나 어떠한 방향으로 부대部隊를 지휘할 것이며, 미래 21세기 군軍을 이끌어갈 사랑스런 나의 후배 전우戰友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가르침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부대와 함께 전우와 함께” 할 오늘 하루를 설계하고 다짐하는 기도祈禱로 하루 아침을 열어 나간다.
부족함이 많은 중생衆生의 길 속에서나마 항상 부대와 전우들을 생각하고 군의 발전과 전우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계획해보는 생활의 자세가 곧 호국불자護國佛子 장수將帥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때때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가까운 산사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큰스님들을 모시고 초청법회들을 통해 귀한 법문法門을 듣고 힘겹게 화두話頭를 잡으며 마음을 다잡아 가기도 하고, 가끔씩이면 부대 인근의 호국護國 성지聖地를 찾아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배우고자, 임진란壬辰亂을 당해 나라 구하는 길에 앞장서서 팔도선교 도총섭의 직책을 수행했던 서산 대사西山大師님, 절충장군 사명 대사四溟大師님, 진위장군 영규 대사靈圭大師님의 호국護國의 뜻을 찾아보기도 하고 원효 대사元曉大師님의 장하신 기운을 느껴보려 ‘척판암擲板庵’을 비롯한 여러 곳의 성지순례聖地巡禮를 통해 수없이 남겨주신 옛 발자취를 더듬어보기도 한다.
언제나 산사를 찾아 참배參拜를 올릴 때면 우리 산사는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된다. 이렇듯 수려한 내 조국 금수강산錦繡江山을 보며 군인軍人으로서 가지는 생각은, 이 아름다운 우리의 영토領土를 튼튼히 지켜 평온한 얼굴로 일념정진一念精進하시는 모든 불자佛子님들의 얼굴에 다시는 전쟁의 상혼으로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所望들은 결코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방國防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자랑스런 나의 전우인 국군 장병들과 함께 우리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원願을 세우고 각자의 소임과 역할을 다해줄 때만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존망國家存亡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이미 옛 성현聖賢들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역사상 우리 선조들께서는 언제나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반만년의 역사를 지키셨으며 그러한 고귀한 희생의 대가로 오늘날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불교는 보국안민保國安民을 기원한 호국불교의 정신 속에 신라 화랑도花郞徒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원광 법사圓光法師의 <화랑오계花郞五戒>로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고려의 팔만대장경,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 대사와 사명 대사, 영규 대사께서 승병僧兵을 일으켜 구국의 전선에서 이 나라를 외침으로부터 지켜오는데 주저 없이 앞장서셨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국가의 운명을 지켜왔던 호국불자들의 기개氣槪와 호국사상을 배우고 익히며 나는 야전野戰을 누비는 군인으로서 가야 할 ‘참 군인의 길’과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는 호국 신앙생활의 기초를 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리던 화랑花郞처럼, 불심佛心으로써 이 땅과 겨레를 지키겠노라는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호국불자로서의 자세를 일상 속에서 실천한다고 해보지만 하루 하루를 지내고 다시 돌이켜볼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과 아상我相에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봄, 여름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순수함을 닮은 노력보다는 더 큰 열매만을 기다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는 아닐까?’ 생각하며 또다시 정진精進을 시작하면서 38년째 오직 자랑스러움과 자부심 속에 푸른 군복을 입어온 불자로서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을 위해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호국불자로서의 도道를 행하리라 마음을 세우던 날들을 새삼 돌이켜본다.
마음을 세우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을들녘을 물결치는 바람처럼 형체가 없음에도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껴보려 애쓰며 군생활을 통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좋은 도반道伴으로서의 인연因緣을 만들어갈 때, 참으로 바람만큼이나 신기한 부처님의 가피加被라 여기면서 부처님의 원력願力을 새삼 느껴보곤 한다.
이렇듯 바람은 본래 형체가 없음에도 만물을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는 자연의 변화로 바람을 보고 느끼게 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그리고 아침, 저녁에 따라 한 번도 같은 느낌의 바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의 가르침처럼 우리네 마음 또한 최초에 세웠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불자의 길을 가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가장 미덥고 사랑스런 도반인 안사람으로부터 40년 가까이 한결같이 잘못됨과 허상에의 집착을 버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되고 다시금 정진의욕精進意慾을 가다듬게 된다.
3~4년 전 본인이 군단장 시절 취임법회에서 취임 인사로 여러 법우들에게 “나는 여러분을 내 자식같이 생각하며 보살피겠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드렸었다. 그랬더니 법회 후 아내의 “당신은 자식에게 너무 엄해서 안 되니, 모든 장병들을 부처님처럼 모시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큰 지적(?)을 받고 그 자리에서 다시 수정 인사드리며 함께 박장대소했던 일은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이다.
돌이켜보면 38년 전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홍안紅顔의 나이에 군복을 입고 누구보다 많은 국가와 군의 혜택 속에서 이제 장군將軍에까지 이른 지금의 나는,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자 부하에 대한 훈육訓育과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어버이로서의 길을 걷고 있으며, 부하들이 나의 지휘와 가르침을 따라 올바른 행동을 보일 때 군인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군인의 길을 택한 어린 나이의 나의 결심에 대견스러움마저 든다.
이제, 얼마나 크고 깊고 맑은 인연이 있었기에 천년 고찰 호국 도량이며 구국救國의 염원念願이 담긴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유서 깊은 대가람 ‘해인사’에서 고귀하신 종정宗正 예하猊下로부터 창공의 파란 구름처럼 “큰 뜻 세워 나라 위해 호국하라”는 가르침을 담은 “청운 거사靑雲居士”의 법명法名을 받고 보니 그 깊은 인연의 오묘함에 놀라며 호국불자 장수로서의 막중한 책임에 다시 한 번 숙연해진다.
이제는 더욱더 새로운 마음과 당당한 자세로 내 자신을 떳떳하고 우직한 바보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참군인의 길을 걷는 호국불자 장수가 되리라 다짐한다.
언제나 호국불자의 모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고 역할완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며, 병영생활兵營生活 속에서 장병 서로가 가족처럼 지내며 올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훌륭한 도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장병 모두에게 정과 사랑을 심어주고, 병영생활을 가정과 같이 만들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또한 훌륭한 시민으로 키워 그 귀한 자식들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들 모두의 부모님의 품으로 보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임이라 생각하며,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지휘관으로서, 장수로서 최선을 다해 우직스럽게 내 몫에 충실히 불법佛法을 지키는 불자 장수로서의 길을 가고자 지금 이 시간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얼마전 ‘되고’ 법칙法則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길이 안 보이면 길을 찾을 때까지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하면 되고,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을 하면 되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이 스스로의 길을 설정하고 그 길을 긍정적인 자세와 정도正道를 향한 무량심으로 자랑스런 참군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진리眞理를 향해 나아갈 수도, 국가를 지킬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안다면 자기를 잘 지켜야 한다. 지혜智慧로운 이는 하루 중 한 번쯤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법구경法句經의 구절처럼 우리 호국불자들이 자기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항상 깨어 있을 때 조국은 더욱 융창하고 번영하리라.
이제 졸문拙文을 마무리지으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155마일 휴전선에서, 또한 하늘과 바다에서 삼군三軍이 나란히 부릅뜬 눈으로 내 조국과 국민을 함께 지키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전우들과 함께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가슴을 활짝 펴고 지휘봉을 꼭 쥐고 오늘도 변함없는 군인의 길을 당당하게 걷기 위해 언제나 즐겨 부르던 ‘행군行軍의 아침’을 부르면서 사랑하는 나의 전우들이 기다리는 병영兵營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