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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그물망에서 빠져나온다면 말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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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전 2005년 02월 276호
장삼매물고대가 張三賣物高擡價하고
이사환의시가수 李四還依市價酬로다
교역불성유작요 交易不成猶作擾하야
이옹점포일시수 李翁店鋪一時收로다.
장씨네 보물은 높은 값을 불렀는데
이씨는 도리어 시장 값으로 흥정하였네.
흥정은 되지 않고 소란만 피우니
이씨는 점포를 일시에 걷어치웠네.

설봉의존 선사에게 삼성혜연 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먹습니까?”
“그대가 그물망에서 벗어나거든 말해주리라.”
“천오백 대중의 선지식이라고 하면서 화두도 제대로 모르는군요.”
“노승은 주지 일이 바쁘다.”

삼성 스님은 임제 선사의 문하에 있을 때 원주소임을 맡았습니다.
선사께서 입적하실 무렵에 이런 법문을 하였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
이에 삼성 스님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잃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후에 어떤 사람이 너에게 정법안장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러자 삼성 스님은 한번 크게 할을 하였습니다.
이에 임제 스님이 말했습니다.
“나의 이 정법안장이 이 눈먼 비구 대代에서 사라지게 될 줄이야.”
그 말을 마치자마자 삼성 스님은 임제 선사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상에서 보듯 그는 임제 스님의 참다운 제자이었기에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여러 총림을 두루 편력하였는데 어디를 가든지 누구나 삼성 스님의 안목을 인정하였으며,
또한 제방에서는 선지식으로 대접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법기는 설봉의존 선사 회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대뜸 설봉 선사를 보자마자
“그물망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평소에 먹던 맛있는 먹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미끼를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설봉 스님 역시 만만찮은 상대인지라 무심하게 한마디 응수하였습니다.
“그대가 그물망에서 빠져나오면 말해주겠다.”

이 두 선지식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기 자기 경계를 거머쥐고서 만 길 벼랑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삼성 스님 정도의 근기가 아니라면
‘그대가 그물을 빠져나오면 말해주겠다’는 이 한마디를 듣고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당대의 선지식인지라 설봉 스님에게
“천오백 대중의 선지식이 화두도 제대로 모르네”라고 대응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설봉 스님이 아닙니다.
바로 ‘노승은 주지 일로 바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상대하기 싫다는 조금은 거친 답변이라 하겠습니다.

선지식들은 서로 만나서 거량을 하면서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합니다.
상대가 강하면 약해지고 상대가 미천하면 스스로를 고귀하게 만들어 응대해주기도 합니다.
두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고고하고 당당한 기상을 지녔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어물어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먼 대중들이 이러한 모습을 두 사람간의 승부로만 이해하려고 든다면
꿈에도 설봉 스님이나 삼성 스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에 가득한 그물을 편 이는 설봉이고 호랑이굴에 깊이 들어간 이는 삼성입니다.
삼성의 집은 부유하여 아이들이 귀엽다고만 하겠지만,
설봉은 아이를 귀여워하다가 제옷이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는 격입니다.
설봉은 하늘의 관문을 움직였고 삼성은 땅의 주축을 뒤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대혜종고 선사는 이 두 선사에 대하여
‘한 사람은 거칠기가 산과 같고 한 사람은 섬세하기가 쌀가루와 같다.
이렇게 거칠고 섬세함이 같지 않으나 달아보면 무게는 똑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자항 박 선사는 ‘그물을 벗어난 금빛 물고기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
‘그대가 그물망에서 벗어나거든 말해주리라’고 한 문답에 대하여
“만리일조철萬里一條鐵이니라. 만리에 한가닥의 쇠줄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천오백 대중의 선지식이라고 하면서 화두도 모르는군요.’
‘산승은 주지 일로 바쁘다’한 것에 대하여,
어떤 납자가 ‘범을 잡으려는 함정인지 창과 방패로 맞선 것인지’를 묻자
“부재자양두不在者兩頭니라. 이 두 가지 말에 모두 있지 않느니라”고 대답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선지식인 개암 붕 선사는 ‘노승은 주지 일로 바쁘다’고 한 것에 대해서
“강 위에 저녁노을이 내려 한 폭의 그림 같은데,
어부는 삿갓을 쓴 채 물가로 돌아오는구나”라고 평評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이 ‘삼성금린三聖金鱗’ 공안도 예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산승이 설봉이라면
‘천오백명을 거느린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군요’라고 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주장자를 들고서 한 방 후려치고는 산문 밖으로 내쫓았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설봉 스님과 삼성 스님은 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번 내지르고 터지고 또 서로 거듭 문답이 오고 갔으나 결국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투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사양하면 모든 것에 여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두 선지식의 답변 속에서 뭔가 승부를 가려보겠다고 달려든다면 이미 늦은 일입니다.
이러한 그의 물음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하면서
대답을 해왔지만 사실 이것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들만의 안목일 뿐입니다.
용맹정진에 동참하는 모든 대중들은 나의 안목으로 이 문답에서 얻고 잃은 것이 있는지,
이기고 진 것이 있는지를, 또 이 화두를 통해 두 선지식이 과연 제대로 된 안목을 갖추고 있었는지
스스로 납월 팔일날 새벽 떠오르는 샛별을 바라보면서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금린투망욕탄주 金鱗透網欲呑舟하야
일향충파역수류 一向衝波逆水流로다
각피어옹한인조 却被漁翁閑引釣하야
수파축랑공유유 隨波逐浪共悠悠로다.
금빛 고기가 그물을 벗어나 배를 삼키려고
한결같이 파도에 부딪치면서 물을 거슬러 오른다.
그러다가 어부들의 낚시에 걸려 들었지만
물결과 파도따라 함께 유유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