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의 의미는 안다는 것이다. 알면 좋아진다. 그래서 아름답다. 유마께서 그곳에 모인 서른둘 대보살에게 둘이 아닌 이치(不二)에 대해 물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떠한 것이 보살의 둘이 아닌 법문에 듦이라고 생각합니까?”
“내 뜻으로는 모든 법(法)이 말할 것도 없고(無言), 이를 것도 없으며(無說), 보일 것도 없고(無示), 알릴 것도 없어서(無識), 모든 질문과 대답을 초월한 것(離諸問答)이 바로 둘 아닌 법문에 듦입니다.”
문수 보살을 비롯한 각 보살마하살들은 해탈의 경지에 대해 각기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곧 유마의 대답에 관심이 모였다.
그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는 제각기 각자의 대답을 말씀드렸거니와, 어진 이께서는 마땅히 어떤 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듦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
유마힐은 잠잠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然無言).
그때 문수사리가 찬탄하며 입을 열었다.
“좋고도 좋습니다(善哉善哉). 글자도 언어도 없음이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둘 아닌 법문에 듦입니다.”
조선 후기 서예로 유명한 학자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는 몇 장의 그림도 남겼다. 서법書法과 근본이 다르지 않은 몇 장의 난초그림과 세한도가 그 전부이다.
이 그림은 그의 시동侍童이었던 달준達俊에게 이리저리 손 가는 대로 그려주었던 작은 난초그림이다. 여기저기를 떠도느라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가 이십 여 년, 그의 만년에 그린 것이 그의 불이선란不二禪蘭이다. 추사는 우연히 이 난초를 그려놓고 그림이 어찌나 마음에 찼던지 네 번이나 거듭거듭 그 소회所懷를 제문題文으로 적어놓았다.
不作蘭畵二十年 난초그림을 안 그린 지 이십년 만에
偶然寫出性中天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찾았네.
閉門覓覓尋尋處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 이곳이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이네.
若有人强要爲口實 만약 어떤 이가 말하라고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 난 마땅히 유마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추사의 난초는 시각적으로 난초를 의식하지 않았다. 난초의 유려한 선線을 닮고자 하지 않았으며, 구구절절한 자태와 방안에 가득한 향香에 대해서도 무심하다. 또한 군자의 향과 학식의 기운을 굳이 내어보이고자 하는 마음조차 멀리 있으니 꽃과 잎이 있어 난초인가 할 뿐이다. 그의 글씨는 힘과 기운이 특징이건만 마르디마른 붓질과 거칠게 뽑아낸 난잎은 전란에 시름하던 두보의 듬성듬성한 머릿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씨와 난초는 묘한 조화를 이끌어낸다. 가벼운 중에 힘이 있고, 기운이 있는 가운데 해학이 있으니 무심하고 우연히 얻어낸 그의 내공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선禪은 비장한 각오로 시작하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끝없는 수행이 쌓여야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찰나 중에 그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며 미소짓게 하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유마의 침묵은 마치 까만 밤하늘 별빛만큼이나 오늘에 빛난다. 수많은 말과 글이 칠년 동안의 지루한 홍수처럼 주변에 넘쳐나는 이 시대, 침묵이 별빛 같은 스승은 어디에 계시는지…. 오늘도 말이 길어졌다.